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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의 새콤달콤 과학 레시피] 미술관에 놀러 간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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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붓을 들고 페인트 칠을 하는 사람을 봤다. 순간 그가 미술가인지 페인트 작업자인지 헷갈렸다. 길을 걷다 건물 벽에 페인트 칠을 하는 사람을 봤다면 당연히 페인트 작업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들렀던 미술관의 전시실 안에서 페인트 칠을 하는 그를 봤을 때 그의 직업이 궁금했다. 과연 예술이란 뭘까? 똑같은 붓을 들고 페인트 칠을 해도 누구는 미술가가 되고 누구는 페인트 작업자가 된다.

과학은 개인의 주관적인 감성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예술은 작가의 주관적인 감성과 철학으로 작품을 만드는 학문분야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야 할 과학과 예술이 최근 밀애를 즐기고 있다. 과학 실험실에서나 볼 것 같은 물건들이 미술관에 전시되고 첨단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모여서 미술가의 강의를 듣는다. 과학과 미술이 만나 핑크빛 사랑을 키워가는 현장을 살짝 들여다보자.

박테리아 배양 플라스크,대전시립미술관 박테리아 배양 플라스크,대전시립미술관

▶생물 실험기구를 전시한 미술관

곰팡이를 연구한 파스퇴르의 실험실에서나 볼 것 같은 곰팡이와 박테리아가 가득 피어난 플라스크가 미술관에 전시되었다. 피카소의 그림처럼 추상화를 볼 요량으로 놀러 간 대전시립미술관에서 필자는 세계관이 충돌하며 깨지는 경험을 했다. 버리기 아까워 세탁기 뒤편 구석에 처박아 둔 잡동사니처럼 실험실 구석에서 퀘퀘 묵은 냄새를 풍기며 놓여있던 실험기구들이었다. 그 곰팡이 냄새나는 그릇들이 버젓이 미술관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미술품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단지 장소만 바뀐 것뿐인데 무척 달라보였다. 과학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것은 대전시립미술관의 '바이오' 특별전에 전시된 것이었는데 '2018 대전비엔날레'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과학의 도시 대전에서 2018년 가을에 '아트 인 사이언스'(기초과학연구원), '바이오 에티카'(한국화학연구원), '아티스트 프로젝트'(창작센터와 KAIST비전관), '바이오 판타지'(DMA아트센터) 등도 함께 열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찌든 기름이 덕지덕지 묻어있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공장의 작업실을 뚝 잘라서 갖다 놓은 것 같은 전시회를 2018년 10월에 개최했다. '노동의 싱글 숏'이란 주제로 열린 하룬 하로키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그는 노동과 전쟁 또는 테크놀로지 등과 같은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다. 시끄러운 기계음과 먼지가 가득한 공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담긴 영상도 모니터에서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산업기술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폭력적인 면을 비판하려고 했다. 미술관에서 낡은 기계부품과 공장의 도구들을 보면서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폭도 조금 더 넓어졌다.

이외에도 미술관에서 과학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 가끔 열린다. 2014년에도 대전시립미술관 주관으로 '과학예술 콘퍼런스'가 열렸는데 카이스트의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문화예술계 예술인들이 만나 과학과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해 토론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똑 같은 하나의 뇌를 가지고 과학연구도 하고 미술품도 감상하고 있으니 이러한 행사가 이상할 것도 없는 것 같다.

비디오아트,대전시립미술관 비디오아트,대전시립미술관

▶과학과 미술의 랑데부

미술관에서 만난 과학을 살펴봤으니 이제 과학 연구원에서 만나는 미술을 살펴보자.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의 건물 안에 들어서면 로비에 걸린 미술품이 미소 지으며 맞이한다. 신약과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연구동 건물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대구의 화가가 기증한 멋진 그림들이 곳곳에 걸려있다. 다른 연구원에 가더라도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건물의 곳곳에 미술작품이 걸려있다.

이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이 모여서 미술 강의도 듣는다. 대전 연구단지에 있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에 '과학기술과 예술, 우린 원래 하나다!'라는 주제로 2012년에 열린 행사에서 이지호 이응노미술관 관장을 초청하여 미술 강의를 들었다. 이 관장은 과학과 미술은 이미 하나가 되었다고 강연했다.

국립과천과학관에서는 '사이아트(Sci-Art)' 전시를 2017년에 개최했는데 '상상하는 미술전'이라는 주제로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 만들어 낸 멋진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특히 첨단 과학장비를 사용해서 아주 작은 세상을 촬영한 사진들이 인기를 끌었다. 이 중에 '뇌 속의 유성우'라는 작품은 배아의 대뇌피질의 신경세포를 형광단백질을 이용하여 초록색, 빨간색, 원적외선 등의 색으로 촬영한 작품이다. 신기하게도 뇌의 신경세포의 모습이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연상시킨다. 이외에도 '그래핀 벌집', '눈 속에 펼쳐진 무지갯빛 혈관' 등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과학자들이 실험하다가 찍은 사진이지만 멋진 미술작품으로 전시된 것이다.

또한 '예술은 과학일까? 과학은 예술일까?'라는 주제의 시리즈 특강이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2018년 가을에 진행되었다. 디자인, 생명과학, 물리천문 등을 전공한 전문가 강사들의 과학과 예술에 대해 강의가 이어졌다.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첨단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이오 특별전,대전시립미술관 바이오 특별전,대전시립미술관

▶창의성이라 불리는 쌍둥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위키백과사전은 그를 화가,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계획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로 소개하고 있다. 이처럼 예전에는 과학과 예술이 하나였다. 그런데 18세기를 지나 19세기가 되면서 과학과 예술은 분리되었다.

어원을 보면 예술을 뜻하는 영어 단어 'art(아트)'는 라틴어 'ars(아르스)'에서 생겨났고 이것은 그리스어 'techne(테크네)'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바로 이 'techne(테크네)'에서 과학기술을 뜻하는 영어 단어 'technique(테크닉)'과 'technology(테크놀로지)'가 생겨났다. 그러니까 예술과 과학은 하나의 어원에서부터 탄생한 쌍둥이인 셈이다. 요즘도 예술인이나 과학자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늘 목말라하며 추구하는 것을 봐도 둘은 닮아있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과학자가 미술관에 가면 무슨 생각을 할까? 사실 별 생각이 없다. 그저 찌든 일상의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나 그림을 보며 생각을 비워내며 거닐다 온다. 모든 것이 연결된다는 초연결의 시대에 과학기술이 예술과 손을 잡고 랑데부를 시작했다. 최근 의료기기와 헬스케어기기들이 실용적인 기능에 예술적인 가치를 더해 명품화되고 있다. 피카소의 그림이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와 같은 예술작품이 환자를 치료하고 재활을 돕는 날이 멀지 않아 올 것이라 기대해 본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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