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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코뚜레/장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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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성 씨 장기성 씨

올봄 첫 안개가 앞개울 냇가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조약돌 틈새 살얼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만물을 깨운다.

초등학교 다닐 때다. 동네 남정네들이 삼삼오오 모여 송아지 코청을 뚫는 코뚜레 의식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 놈이 태어난 지 채 한 돌 남짓 되지 않는 무렵이다. 코뚜레는 소의 콧구멍 사이에 구멍을 내고 나무 고리를 끼우는 일이 아니던가. 앳된 송아지에게 이 의식은 살아생전 처음 겪는 폭력이요 모욕이기도 했으리니. 멀찌감치 떨어져 물끄러미 지켜보던 어미는 아픈 기억을 되새김질이라도 하듯 모가지를 아래위로 흔들어대며 두 뿔로 소죽통에 들이 받길 반복했다. 모성애의 처절한 통한이었다.

어린 나는 애잔한 광경에 놀란 나머지 흙담벼락 옹벽 뒤에 몸을 숨긴 채 순간순간 오싹함과 낯설음에 빠져 넋을 잃고 말았다. 누렁소를 대하는 사람의 무례함과 오만함을 탓하면서 말이다. 코뚜레는 자유로부터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는 간악한 의례가 아니던가. 이름뿐인 명목상 코뚜레가 아니라 한 영혼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이 숨어 있었으니.

오늘이 바로 그 장날이다. 그 송아지가 시집가는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상상은 빗나갈수록 좋으련만. 어설프게 코뚜레를 콧잔등에 걸친 송아지가 보기에도 어쭙잖고 안쓰럽다. 왕방울처럼 큰 눈엔 눈곱이 끼었고 엉덩이뼈가 앙상하게 남은 곳엔 똥 딱지가 더덕더덕 붙어있다. 외양간 우리에서 그 놈을 끌어내자 연신 뒷걸음질을 하더니 이내 어미 품속으로 기어들길 거듭했다. 소이까리를 바싹 잡아채고 우리 밖으로 끌어내면 낼수록 울부짖으며 몸부림을 쳤고 여린 코언저리엔 선홍빛 망울이 흘러내려 코뚜레를 흠뻑 적셨다. 차마 눈뜨고 보기 힘에 부쳤다.

육감으로 자식과 작별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어미의 눈가엔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이내 작달비를 쏟아냈다. 회귀할 수 없는 상실감은 가슴을 흔들고 심장을 멈추게 한다더니 무안하고 민망함이 앞섰다. 어미는 대여섯 날 남짓 동안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더니, 자식냄새가 배인 쪽빛하늘을 향해 거친 괴성만을 질러 댔다.

유년시절 때다. 그해 봄은 동짓달 바람처럼 차갑고 매서웠다. 바람이 거세게 불 때 마다 감나무 우듬지에 꽈리를 튼 까치집이 위태롭게 흔들렸고, 연초록 잎새가 기지개를 켜기도 전에 나무 가지에 이내 얼어 붙어버렸다.

꽃가마가 우리 집 마당 댓돌위에 도착하여 새색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이 바로 신부가 시댁으로 떠나는 신행 날이다. 네 명의 가마꾼도 서운함이 묻어난 듯 흐릿한 창공을 향해 연신 줄담배를 피워댔고, 꽃가마 꼭대기엔 호랑이 가죽 호피를 걸쳐 놓았다. 가마 안쪽을 힐끗 쳐다보니, 꽃가마 속에는 숯과 목화씨를 바닥에 뿌려놓았고 그 위엔 꽃무늬 방석을 깔아놓았다. 왼쪽 구석에는 요강이 덩그러니 놓여있고, 오른쪽에는 종이를 꼬아 묶은 조각들이 작은 광주리에 가지런히 담겨있다.누이가 타고 갈 자리다.

누이는 연지곤지로 곱게 단장한 채, 빈 벽 쪽을 연신 멍하니 쳐다봤다. 아련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초조함과 서러움이 느닷없이 찾아와 추억이 널브러져 있는 안방 이곳저곳을 뒹굴었다. 새색시의 수줍음이 입가에 벙긋 감도는가 싶더니, 이내 눈가에 맺힌 이슬이 연지곤지를 얼룩덜룩하게 수놓아버렸다. 새색시의 단아함은 일순간 온데간데없어지고, 어제의 내 누이로 또다시 바꿔놓았다.

골목에는 네댓 명의 일꾼들이 색시의 옷가지며 세간살이를 지게위에 실은 채, 지겟작대기를 비스듬히 세워놓고 망중한에 빠져들었다. 누이가 안방에서 마당 쪽으로 걸어 나오자, 허공을 향했던 눈동자들이 순간 가마 쪽으로 팽팽히 에워쌌다.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막 할 즈음 어머니가 보이질 않는다. 아뿔싸. 차마 떠나는 딸의 뒷모습을 보느니 현장부재를 택한 것이 분명하였다. 이런 작별의 순간을 감당하기에는 어미의 심장이 너무 작은 탓이었다.

냇가 어귀로 물동이를 이고 진작 나서 버렸다. 작별인사 한 마디조차 딸에게 꺼내기도 듣고 싶지도 않았을 게다. 그 옛날 자신이 시집올 때를 되뇌면서 말이다. 어미가 넋 놓은 채 길러 올린 물동이 속엔 애련과 가련이 쌍둥이처럼 떠다니며 유영했고, 가슴엔 딸에 대한 애처로움과 처량함이 속속들이 파고들었으리라. 새색시가 신행 가는 고갯길은 예나지금이나 무엇이 다르랴. 곧 생이별이요 고행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우연찮게 연전에 사제 서품식에 참석했다. 맨바닥에 몸을 대고 납작하게 엎드린 애송이 사제의 등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니 목덜미에 가래톳이 돋았다. 마주 포갠 손등에 이마를 대고 다리를 곧게 뻗은 모습이 더는 낮아질 수 없는 처연한 자세였고, 저렇게 까지란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사제가 되는 길은 사막을 걷는 낙타와 무엇이 다르랴. 신품성사를 받기 전 신앙 고백을 할 때에는 순명을 맹세하지 않던가. 사제의 순명은 곧 복종과 순종의 다른 이름이었다.

불쑥 코뚜레와 가마가 생각났다. 코뚜레와 가마는 그저 속박과 복종만을 주는 게 아니었다. 자만과 아집에서 벗어나 진정한 성숙과 조화에 이르려는 통과의례요, 더 많은 자유의지를 얻으려는 거룩하고 장엄한 의식이었다. 발효과정이요 정제과정의 다른 이름으로 말이다.

올봄 첫 안개가 앞개울 냇가에 살포시 내려앉더니 햇살을 피해 도망치듯 사라져갔다. 내 가슴 속에 묵혀두었던 설익은 코뚜레와 가마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들이 일순간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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