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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반딧불이 한의원/김 현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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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 씨 김현숙 씨

노령이라는 고비 길을 힘겹게 오를 무렵, 오른쪽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뾰족한 칼로 도려내 고춧가루를 뿌린 듯 통증은 정신을 아찔하게 했다. 관절염이었다. 어린 시절 체기가 있으면 어머니는 손끝으로 피를 모아 바늘로 따주곤 했다. 그 순간적인 바늘의 지나감도 아픔으로 느낄 만큼 통증에 약한 내게 퇴행성관절염은 견디기 힘들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나는 참 무심한 딸이었다는 걸 관절염 통증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무릎 통증으로 고생하셨는데 연골주사 맞는 게 치료의 전부였다. 밤새 아프다고 끙끙 앓으면 나는 마지못해 파스를 한 아름 사다 드리거나 진통제를 내미는 게 고작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얼마나 야속했을까 싶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아파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게 관절염 통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산후통으로 힘들어할 때 어머니는 밤을 새우셨다. 수건에 찬물과 더운물을 번갈아 적셔가며 이마에 올려주고는 고통을 함께 나누셨다. 그때는 단지 어머니 성격이 극성스러워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진단을 받기 위해 유명 정형외과에 갔을 때 긴 소파에 기대어 누워있는 노인들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성냥개비처럼 마른 몸에 그마저도 다리가 아닌 의자에 체중을 부대끼고 있었다. 고령화는 그렇게 병원마다 노인들의 무거운 삶을 보여주었다. 환자들은 야윈 손에 번호표 한 장 달랑 쥐고 물리치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은 마치 명절 때, 서울역에서 고향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줄지어 섰던 인파 같았다. 매일 그렇게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면서 통증과 싸우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통증을 낫게 해줄 치료를 고대하며 노인들은 기다림을 반복했다. 나 또한 그 속에 끼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다림에 지친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정형외과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대책 없이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정류장 건너편 빌딩 모퉁이에 '반딧불이 한의원'이란 조각 무늬가 눈에 박혔다. 난 무엇에 홀린 듯 한의원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한의원은 3층에 있었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을 디뎠다. 돌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무릎이 비명을 질러댔다.

대기실에 있던 환자들은 다양한 물리치료기구를 이용하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스스로 기구를 사용하다 보니 지루하지 않게 기다릴 수 있었다. 어떤 치료기구 앞에서는 서로 하겠다고 다투는 분도 있었다.

"어서 오세요. 우리 한의원은 처음이시죠?"

간호사가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억지로 짓는 미소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친절이었다. 난 괜스레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한 줄기 훈훈한 온기가 나의 목마름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협소하지만 안락한 침대에 눕자 정확한 전기치료기와 찜질팩이 아픈 부위를 따스하게 감싸주었다. 간호사의 손길도 따스했다. 곧 의사의 침술이 시작되었다.

"관절염은 그 연골부위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혈관에 침을 놓습니다. 그래야 혈관과 신경이 원활하게 소통되면서 통증의 원인이 잡힙니다. 다음 단계는 주변 근육이 튼튼해지도록 운동을 하셔야 합니다."

단순한 치료가 아닌, 의사의 처방에 맞게 환자도 노력해야 병을 이길 수 있다는 점을 의사는 강조했다.

내 몸에 침이 꽂히는 순간, 깊은 후회가 몰려들었다. 그때 나는 왜 어머니를 한의원에 모시지 못했을까. 침 한번 맞게 해드리지 못한 불효가 무릎이 아닌 가슴의 통증으로 몰려왔다. 어머니는 관속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무릎을 펴지 못했다. 통증 때문에 똑바로 눕지 못하고 항상 새우잠을 잤던 어머니 무릎은 그렇게 영영 굳어버렸고 마지막까지 펴지지 않았다. 돌아가시기 직전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네 병은 내가 가지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수술 잘 받아라."

그때 난 암과 투병 중이었지만 어머니께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생명의 꽃불이 꺼져가는 순간까지 불치병을 앓고 있는 딸을 위해 두 손을 모으셨다. 요즘 부쩍, 어머니가 그립다. 어버이날 어머니를 생각하며 펑펑 울었다.

반딧불이의 발광체는 짝짓기를 위한 원초적인 사랑의 신호이다. 또 하나는 위험한 적이 공격할 때 동료를 구하기 위한 희생의 불씨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깊은 나락에 떨어지는 순간까지 딸을 위해 반딧불이의 불씨가 되어주었다. '반딧불이'란 단어가 눈에 쏙 들어온 건 어쩌면 어머니의 인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무릎통증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걷기가 훨씬 자유로워졌다.

그날 정형외과를 박차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나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되새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머니 떠난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내 가슴속에 파랗게 살아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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