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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논픽션-34 공원/이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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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식 씨 이완식 씨

낙엽이 담긴 마대들을 차에 옮겨 쌓는데 평소 담당하던 동료가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대신 올라가는 공원관리원이 없다. 힘들고 위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달마대사를 쏙 닮은 S동료가 웃으며 말을 건넨다.

"완식이 형이 올라가줘."

"응, 그래. 알았어."

그간 몇 번을 해보았던 터라 나는 가볍게 대답하고 덤프차에 올랐다. 동료가 낙엽 마대를 던져주면 이를 차곡차곡 쌓아야 하는데 이게 보통 작업이 아니다. 한쪽에서 작업하는 동료는 숙련된 솜씨로 잘 쌓는다. 나도 열심히 안쪽에서 쌓아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쌓은 곳에서 마대 2개가 도로 2차선으로 떨어졌다.

"어, 형 내려가 있어. 내가 할게."

아찔한 순간이었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 마대가 잘못 떨어지면 자칫 큰 사고로 번질 수 있다. 한편에서 마대를 쌓던 동료가 말한다.

"사람이 많으면 뭘 해. 차가 오는 쪽을 보고 수신호 하는 사람도 없이 말 여."

낙엽마대를 쌓는 데도 요령이 필요하다. 불룩한 마대자루를 잘근잘근 밟아가면서 차분하게 쌓아야 한다. 아직도 나는 경험이 부족하다. 막일을 하는 데에는 사회초년생이나 다름없다. 공원관리원으로 들어 온지 어언 5개월. 근로계약기간이 12월 말까지니까 일주일도 채 안 남았다. 평생 이런 일을 해 보지 않은 내가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오늘, 차에 올라가 마대 자루 작업을 쌓다가 하마터면 큰일을 당 할 뻔 했다. 군대에서 제대 특명을 받아놓고 몸조심을 해야 할 처지와 같은 요즘인데 함부로 일을 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겼다면 어찌 되었을까. 이런 작업을 앞으로 몇 칠 간은 오후에 매일 해야 한다. 사실 금번에 다시 모집 공고된 재계약시험접수를 포기했다. 그간 육체적으로 지친데다 근무 중 다친 손목치료를 하기위해서라도 몇 개월 휴식기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친다.

지난 6월 초순이었다. 산불감시원 근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남해로 일박이일의 모처럼 따끈한 여행을 다녀왔다. 그 후 며칠이 지나 000시청에서 기간 제 공원관리원 모집공고를 냈다. 처음엔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있어야 하고 예초 기나 기계톱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근무는 8월1일부터 12월말까지다. 근무 조건은 주 5일 근무에 기본급이 월 172만원이다. 지원을 마음먹고 담당부서를 찾았다. 담당자가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본다.

"필기시험도 있고 체력검정도 있습니다. 아, 차가 없으시군요. 자전거라도 있어야 됩니다."

"아, 네, 그리하겠습니다."

예초기와 기계톱의 사용 가능여부를 묻는 난이 있다. 예초기에 할 수 있다고 동그라미를 쳤다. 그건 며칠 배우면 된다. 시험 보는 날, 많은 지원자들. 같이 산불감시원 근무한 동료가 열 명은 넘어보였다. 그런데 그날 응시자 중 내 이름이 첫 번째로 올라가 있다. 필기시험은 객관식 20문제다. 상식적인 문제라지만 어렵고 알쏭달쏭하다. 문제를 여러 번 읽어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근사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에 동그라미를 쳤다. 나도 어려우면 다른 사람도 어려운법,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체력검정이다. 15키로 마대 8개를 쭉 쌓아놓고 그걸 반대편으로 운반하는 시험. 물론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한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반대편에 갖다 쌓았다. 앞에서 스톱워치를 누르던 담당자가 크게 얘기한다.

"48초 9입니다."

처음이라 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 된다. 주변에선 체구도 작은 사람이 어디서 그리 힘이 나오느냐는 말들을 풀어놓는다. 다음 내 뒤로 나보다 나이어린 지원자도 같은 산불동료인 G형도 50초를 넘는다. 지원자 중엔 아예 걸어가는 사람도 있고 조심조심 나르는 사람도 있고 가다가 넘어지는 사람도 있다. 여성도 한 분 있었는데 배려차원에서 들고 달리기 횟수를 남성보다 2회 줄여준다. 나는 어느 정도 이번 시험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한 순간, 나 보다 잘하는 지원자가 제법 눈에 띤다. 전체적으로 볼 때 상중하로 구분하면 아마 상에 든 것 같다. 기존에 일하던 직원도 대부분 다시 응시했다. 종전의 근무 직원이 훨씬 잘 하는 것은 당연하다. 추가로 채워지는 지원자들끼리 경쟁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경쟁률은 5대 1이 넘는 것 같다. 내 응시순서가 첫 번이라 약간은 불리함을 안고 있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더 빨리 할 수 있었을 텐데. 합격자 발표는 다음 날 오후 5시다.

"내일 오후 5시에 합격한 사람에게 문자를 보낼 겁니다. 문자가 안 오면 떨어진 것으로 알고 계시면 됩니다."

다음 날 오후 5시가 되었다. 나는 신시가지를 한 바퀴 돌았다. 그 시간이 넘어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십분, 이십분, 떨어졌음에 틀림없다. 기존의 공원관리원이 있으니 결국 몇 명에 불과한 인원을 새로 충원하는 시험이기에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씁쓸한 공백을 채우기 위해 마음껏 취하고도 싶었다. 이번 시험에 같이 지원했던 산불감시원 시절 동료에게 전화를 했다. 자신도 문자를 안 받았다며 오후 6시까지 기다려보자고 한다. 공고문에 분명히 합격자 발표 시간은 오후 5시로 되어있는데. 내가 잘못 본 것도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품었다. 정말 한 가닥 실 날 같은 바램이었다.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갑자기 문자가 뜬다.

"(Web발신) 공원관리원 모집에 최종 합격하셨음을 알려드리며 근로계약서 작성 등을 위한 공원녹지 과 방문 날짜는 7월 중 문자로 재 통보하여 드리겠습니다."

그 시간이 오후 5시 49분이었다. 잠시 후 동일한 문자가 다시 뜬다. 참, 이럴 수가 있는가 싶었다. 불합격이라 알고 있었는데 합격통보를 받은 기분, 날아갈 듯 했다. 이제 자전거도 사고 예초기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 달 남짓한 여유기간이 있지 아니한가.

자전거를 구해야 한다. 나는 평소 약초관리사 양성과정 강의를 받던 중 알게 된 U회장에게 혹 사용안하는 자전거라도 있는지 물었다. 다행히 2대가 있는데 한 대는 집에 있고 한 대는 농장에서 사용하려고 사놓은 자전거가 있다는 것이다. 농장에서 사용하는 자전거를 흔쾌히 주겠단다. 며칠 후 농장에 갔다. 그 분이 아는 사람에게 선물로 받았다는 건데 제법 쓸 만하다. 몇 군데 손만 보면 될 듯싶었다. 자전거 새것은 도둑맞기 십상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시건장치를 해놓아도 절단하고 가져간다는 것이다. 차라리 도둑맞을 염려가 없는 중고가 좋은 것이라고 주변에서 알려준다. 하지만 수리비로 무려 십만 원이나 들었다.

드디어 입사 첫 날, 8월 1일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신입사원은 마음에 설렌다. 아, 어떤 동료가, 어떤 선임이 있을까. 공원관리팀장은 사십대 후반의 여자였다.

"여러분은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분들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공원관리를 잘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 말만 하고 자리를 뜬다. 관리원은 모두 19명인데 기존의 관리원은 15명, 이번에 신입은 4명이다. 반장이 들어와서 모두에게 소개하지도 않고 4명에 대해 담당공원과 같이 근무하는 관리원을 말해준다. 제일 막내로 보이는 동료가 만원씩 걷는다. 한 달에 만원 씩 걷어 커피도 사고 작업 시 이따금 간식도 하는 데 쓰기 위해서란다. 대기실 옆 창고에서 신입직원인 우리는 보급품을 받았다. 푸른 바탕에 시청마크가 붙어있고 공원 관리라 표시된 옷, 신발, 모자 그리고 군대로 말하면 총에 해당하는 집게를 나눠준다. 키가 훤칠하고 깔끔하게 생긴 막내 동료가 손잡이 상단 부분에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청 테이프를 칭칭 감아준다. 처음 내게 맡겨진 곳은 00공원이었다. 처음 일주일은 오전에 청소하고 오후엔 단체작업이고, 다음 일주일은 오전에 청소, 12시부터 분수대관리였다. 9월 중순까지 일주일마다 교대해서 관리한다. 신시가지 바로 주변에 있는 분수대라 꽤 넓고 쾌적했다. 입사한 달인 8월은 유난히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30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계속되는데도 작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살인 더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작업에 열중했다. 무성한 풀 깎기와 민원이 들어온 지역의 잡초 뽑기가 주 업무였다. 낫은 별로 소용이 되지못했다. 대신 선임들의 기계톱이 능숙하게 나무와 풀을 자른다.

민원이 들어오면 민원인의 인적사항을 적고 현장을 직접 방문해서 민원사항을 확인해야 함에도 관련 팀 직원의 전달만 받고 현장에 투입되니 헷갈리기 일쑤였다. 선임들은 이런 사항에 대해 불만만 털어놓는다. 정작 반장에게는 한 마디도 못하는 듯했다. 이런 데도 있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일주일 씩 교대로 하는 분수대업무는 내게는 생소한 업무였다. 신시가지 중심지 도로 옆에 자리한 널찍한 분수대. 이곳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어떤 일이건 처음엔 많은 갈등이 찾아온다. 내가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이 일이 내게 맞는 일인가 하고. 하지만 내 나이엔 그건 사치다. 총대(쓰레기집게)를 들고 지나가면 혹시라도 듣는 게 아닐까 하는 말.

"저, 꼰대, 노숙자 같은 사람, 육십 중반이 훨씬 넘었는데 참 얼마나 잘못 인생을 살아왔으면 저렇게 일하지 않으면 안 될까."

공원관리원이 된 지 이틀 째였다. 나와 같이 근무하는 분의 대체휴무일이다. 내가 그 시간에 나가 분수대를 볼 수밖에 없었다. 분수대의 작동요령 숙지는 기계에 문외한인 내게 쉬운 일은 아니다. 눈앞에 떨어진 일, 분수대 일을 마스터해야 한다. 인근 선임에게 물어보면 일사천리로 대답한다. 나는 나름대로 들은 사실을 토대로 매뉴얼을 작성했다. 그 선임은 예전 공무 과 출신에다 전기, 지게차, 열관리, 보일러 등 많은 자격증을 가지신 분이다. 나는 지금껏 사무직에만 종사 했던 터라 그 외의 업무는 초보자나 다름없다. 필요사항을 들으면 꼭 기록해야 하기에 항시 메모지와 필기도구를 지참했다.

분수대는 정오부터 작동한다. 작동은 40분하고 20분 중단되었다가 재 작동하기를 반복, 오후 5시 40분에 종료된다. 경우에 따라 최대 3분까지 시차가 생길 수 있다. 만일 그 이상의 시차가 발생하면 에러가 생긴 것으로 보고 제어판의 1번째 시계를 확인한다. 시계가 일치하지 않으면 현재 시간에 3분을 더한 시간에 시계 판 우툴두툴한 부분을 돌려 맞춰주면 된다.

그 날 분수대가 작동되고 있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애들 세 명이 분수대로 온다.

"학생들, 이거 5분 후에 물 중단해, 알았지?"

얘들이 서로 쳐다보고 웃는가 싶었다. 그 중 한 아이가 어깨를 으쓱대며 말한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대."

무슨 의미로 얘기한 것일까 궁금했지만 나는 그 순간 경전하사(鯨戰蝦死)라는 고사 성어를 생각했다.

"어이, 학생들, 그거 한자로 가르쳐 줄게. 고래 鯨, 싸움 戰, 새우 蝦, 죽을 死 알았지? 경전하사"

학생들은 나를 그윽한 눈초리로 올려다본다.

"아저씨, 섹스가 뭐래요?"

참, 어처구니가 없다.

"아, 그거 서로 좋아하는 것이지."

"아저씨, 자위가 무엇이지요?"

"아, 그거 스스로 지키는 거지, 뭐."

담담한 내 답변에 학생들은 머쓱 한다. 표정이 무척 장난스럽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고사 성어를 가르쳐줄려다가 나만 시험대에 오르고 말았다. 학교 교실에서의 장면들이 어쩌면 이런 질문들로 우글우글 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절교육과 인성교육의 첩경인 한자교육, 이를 너무 등한 시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아저씨, 바보, 그것도 몰라요. 이거예요."

한 학생이 내게 자위의 표현을 한다. 자신의 주먹으로 거시기 흉내를 내며 '끄덕끄덕'하는 사실 행위를 보여준다. 맞다. 경전하사가 아니라 하전경사가 아닌가.

속담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가져간다는 말이 있다. 그날은 모처럼 산불감시원 할 때 알게 되고 그 덕분에 농작물을 지어먹게 된 쉼터 할머니 집 텃밭에 갔다. 그 날도 민원이 들어온 사안을 현장에 나가 처리하느라 온몸은 땀에 뒤범벅이 되어있었다. 그 상태로 자전거를 몰았다. 아,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옥수수 심은 자리가 휑했다. 고구마 밭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고구마 줄기가 이곳저곳 뿌리 째 뽑혀져 나뒹굴었다. 멧돼지에 당한 거였다. 아마 가족끼리 떼로 몰려와 잔치를 벌인 모양이었다. 허전하고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 참외밭도 마찬가지였다. 가지와 고추, 몇 개 남은 참외, 토마토를 따서 자전거에 실고 집에 가는 길, 인도에 차가 떡 버티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차도로 내려서 가다가 뒤에 차가 오기에 인도로 들어서는데 앞바퀴가 도로 턱에 걸려 그대로 길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옆으로 붕 뜨더니 헛바퀴만 돌았다. 내 얼굴 오른쪽 광대뼈부위는 땅 바닥에 닿아 흙냄새가 물씬 들어왔다. 얼떨결에 짚은 오른손 바닥살갗이 약간 패었다. 살다가 이렇게 길바닥에 패대기쳐지기는 처음이었다. 다행히 몸이 가벼워 그런지 대형사고는 없었지만. 조금 지나 살펴보니 양 무릎 정강이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멧돼지에 당하고 자전거 사고도 난 그 날은 힘든 날이었다. 게다가 그 날은 선임티를 내고 신입관리원을 마치 군대시절 졸병 대하듯 하는 기존의 관리원 때문에 기분이 몹시 상한 날이기도 했다. 사실 동료이고 나보다 세 살이나 아래인 사람이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당신, 그걸 청소라고 했다는 거요?"

34공원 앞에 있는 빌라 뒤에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있다는 것이다.

"아니, 그곳도 담당지역이라고 처음부터 확실하게 알려줬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나도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쏘아붙였다. 그 날 하루 임시 청소구역을 대충 알려줄 때 내가 세심하게 물어보지 못한 탓이기도 했다. 내 마음을 다 내려놓지 못한 그놈의 알량한 자존심. 나이 들어 일하려면 대단한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것을. 예전의 직장에서 근무할 때 청소담당 차장까지 해본 경험이 있었는데. 그 동료는 관리원 중에 총무직책을 맡고 있는 듯 했다. 그 동료에 대한 들리는 소문이 썩 안 좋다. 신입관리원이 들어오면 일차 청소상태점검을 하고 수거하지 못한 쓰레기가 발견되면 카메라에 담아 반장에게 보고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일하다보면 부족한 점이 보이기 마련이다.

8월에 내가 담당한 시민공원은 토요일엔 더러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이곳 지역의 주민들을 이한 한마음 잔치라고 할까. 문제는 다음 날이다. 행사 주최 측에서 청소를 한다지만 별반 도움이 안 된다. 의자에 널 부러진 음식물, 컵, 깨진 소주병, 닭튀김에서 나온 적지 않은 뼈다귀들이 난무한다. 가득 채워진 쓰레기봉투가 9개나 나온다. 깨진 소주병을 하나하나 줍다보면 시간이 잘 간다. 잔디밭이라 빗자루로 쓸 수 도 없다. 비닐 봉투의 배가 터져 질질 흐르는 음식물은 까치의 좋은 먹이가 된다. 봉투에 담아 놓고 잠시 자리를 비우면 어느새 와서 시식하는 까치들은 봉투를 풀어헤쳐놓기 까지 한다. 공원에 사는 까치 들은 통통하다.

팔월의 더운 날, 분수대는 이곳의 명물이 된다. 시원한 물줄기, 아파트에서 엄마들이 자신의 어린애를 데리고 나와 더위를 식힌다. 신발을 안 벗고 들어가는 어린이들이 많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달라는 현수막이 떡하니 걸려있는데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아주머니, 애들 신발을 좀 벗겨주시죠. 신발에 묻어 있는 흙이 분수대에 흘러 들어가면 그 흙이 물에 섞여 다시 나옵니다. 아셨죠?"

마지못해 신발을 벗긴다. 지나가던 학생들이나 나이든 사람들이 가끔 분수대에 와서 신발을 아예 깨끗하게 씻고 가는 사람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그냥 쑥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보인다.

"아저씨, 들어가면 안 됩니다."

지나가는 여학생들이 신발 신은 채로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 손에 물을 적신다.

"학생, 그렇게 들어가면 어떡해,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지."

그 말을 듣고 슬그머니 나와 갈 길을 간다. 심지어 털이라도 씻기려는 듯 털이 유난히 많은 애완견을 데리고 들어가려는 삼십대 초반의 여자도 있다.

"아주머니, 개는 안 됩니다."

이래저래 분수대는 몸살을 앓는다. 어린애를 데리고 온 엄마들이 애들을 지켜봤으면 좋은데 한쪽 쉼터 의자에서 자기들끼리 수다 떨기에 바쁘다. 분수대는 40분간 작동하다가 20분 멈춘다. 그 사이 나는 분수대안에 떨어진 쓰레기도 줍고 분수대 물 분출구에 껴 넣은 이물질을 제거한다. 종이, 껌, 풍선 등이 들어가 물이 잘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 제일 걱정되는 게 하나 있었다. 물주입구를 덮고 있는 돌 판이 유독 미끄러워 애들이 지나가다 훌러덩 넘어진다. 머리라도 돌에 부딪치면 큰일이다. 어느 땐가 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두 살 가량의 어린이가 그곳을 지나가다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꽝"

둔탁한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잘못하면 책임문제가 따른다. 분수대 관리 해태 책임이라는 법률적인문제 발생의 소지가 충분하다. 그 어린애의 할머니 되는 분이 와서 뒷머리를 쓰다듬고 우는 어린애를 달랜다.

나도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괜찮아요? 잘 보셔야죠."

그 상황을 노트에 적었다.

"8월 19일 오후 2시15분경 두 살 여자 어린이 물 주입구 돌에 미끄러져 넘어짐, 개선요망"

기분이 찝찝하다. 저 돌을 미끄럽지 않은 것으로 당장 바꿔야 한다. 이 사실을 같이 교대로 근무하는 선임에게 얘기하니 이미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다. 여러 차례 넘어지는 사례가 발생한 듯 했다. 위험이 상존하는데도 이를 시정하지 않고 있다. 별 수 없이 나는 그 돌 앞에 지켜 서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얘들이 그 옆에 올까봐 두려웠다. 그래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돌을 딛고 어린이들은 또 지나간다.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여기 이 돌이 무척 미끄러워요. 애들이 이 돌을 밟지 않도록 해주세요."

이렇게 말해보지만 그 순간 뿐 이다. 사실 그 돌로 인해 내 오른 손 가운데 손가락에 문제가 생겼다. 물 주입구를 덮고 있는 돌의 무게가 엄청나다. 분수대 업무를 맡고 5일 후인가. 그 돌을 드는 순간 손가락이 젖혀졌다. 그 영향으로 쥐고 펴기가 원활하지 못하였는데 그 다음 날 이번에는 그 돌을 들다가 그냥 순간 돌에 손가락이 끼고 말았다. 이후 손가락이 저리고 물건을 들기도 불편할뿐더러 병마개도 못 딸 지경이 되었다. 정형외과에 들렀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다행히 뼈는 이상이 없단다. 가운데 손가락에 작은 받침대를 대고 감아주고 약 3일분을 처방해준다. 아마도 며칠 전 제초 작업할 때 너무 무리하게 손으로 풀을 뽑은 데도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분수대 일을 하면서 그 돌을 드는 게 제일 조심스러웠다. 무겁기 그지없는 돌을 들기 위해 장날, 재래시장에 가서 쇠갈퀴를 샀다. 오후 5시 40분이 되어 주변을 돌다보면 500원, 100원, 10원 짜리 동전들과 어린이 장난감들이 가끔 발견된다.

9월, 담당구역이 바뀌었다. 철길B다. 이곳 지역에서 쓰레기가 제일 많이 나오는 곳으로 모두 꺼려하는 지역이었다. 처음 지역 인수를 받을 때 보니 범위도 넓을뿐더러 검은 수렁 같은 녹지대가 늡늡하게 자리하고 있다. 뭔가 나올 것 같은 어둑한 수풀이 군데군데 있는 철길B지역은 역을 중심으로 인근 역 까지 그거리가 상당하다. 조리대 풀과 황매화사이에 왜 그리 검은 비닐봉지는 많은지, 산책로엔 왜 그리 담배꽁초가 많은지, 빌라 뒤편엔 왜 그리 막걸리와 소주병이 많은지, 모두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역 주변과 철길 밑, 자전거도로와 인도, 산책로, 33공원, 34공원, 역 밑 녹지대와 빌라사이의 경계선 주변, 이 모두가 내 담당지역이다. 이곳을 다 돌고나면 10시 50분 가까이 된다.

19명의 공원관리원을 총괄하는 반장은 아침 8시 40분에 인원을 체크한다. 눈으로 좌에서 우로 인원수를 헤아린다.

"다 오셨지요. 자, 일 나가시죠."

각자 맡은 담당지역으로 간다. 봉투와 집게를 들고 나서는 관리원들, 자전거로 오토바이로 승용차로 각자 뿔뿔이 흩어진다. 오전 11시, 공원관리사무실에 다시 돌아와 침상에 쭉 앉아 청소하며 겪은 일등을 얘기하며 반장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11시 10분쯤이면 반장이 문을 살며시 열고 인원수를 헤아린다. 머리를 끄덕끄덕하고 하는 말.

"자, 식사들 가시죠."

일찍 보내줘서 고마웠다. 나는 처음에 자전거로 집까지 점심식사를 하러 다녔다. 신나게 페달을 밟아보지만 20 여분 남짓 걸린다. 집에 오자마자 식사하고 양치질하면 20분이 훌쩍 지난다. 다시 자전거로 내달리기를 20여분, 공원관리사무실에 가면 내가 거의 꼴찌로 도착하게 된다. 내게 모여지는 눈초리들.

"졸병이 겁도 없이 고참 들을 기다리게 하는 거야."

그런 표정들이 역력하다. 한 동안 내가 선임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듯 했다. 작은 체구에 얼굴도 동안이라 육십 대 초반쯤으로 생각했는지 대부분의 동료가 내게 거의 반말을 했다. 부를 때도 손짓으로 불러놓고 이것저것 시키는 것이었다. 동료 간의 호칭 문제가 무척 마음에 걸렸다. 같은 나이 인데도 누구는 000형이라 부르고 우리는 00씨라고 한다. 뭔가 일을 시키려면 손가락으로 까딱까딱하며 부른다. 내 전입동기 K형은 그 점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몇 사람 선임동료가 고칠 줄을 모른다. 심지어 자신들보다 7살에서 10살 아래인 동료들에게는 '00야'하고 큰 소리로 부른다. 모두 예순의 나이는 넘었다. 요즘은 자기 아들도 삼십대 이상 나이가 되면 '00야'로 부르기가 쉽지 않다. 한편으로 애정표현이나 친하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여기는 직장이다. 한 번은 나 보다 6살 아래인 선임동료가 작업 도중 송풍기에 기름 넣는데 도움을 요청하면서 오른손 검지로 까딱까딱 한다. 나는 말없이 가서 거들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나보다 덩치가 크고 키도 한 뼘은 더 있는 동료였다. 나는 공손하게 불렀다.

"박 형, 그런데 '까딱까딱' 이 뭐요? 이 형이라 부르면 안 돼요?"

"아, 귀를 가리고 있어서 그랬어요."

"앞으로 이 형이라 부르세요. 그래도 이곳에서 나이 많은 연장자 측에 들어가는데."

이런 일을 K동료에게 얘기하니 잘 했다는 것이다. 누구하나 지금껏 호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동료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 그 동료는 다시 그렇게 부르지 않았다. 또 한 번은 누구를 부르는 것 같은데 관리사무실 안에서였다.

"이 씨, 이 씨."

나는 그게 나를 부르는지 몰랐다. 그는 나보다 2살 아래인 Q라는 전입 동기다. 내가 전혀 응답을 않자 총무역할을 하는 동일한 성을 가진 L선임이 대신 관물사물함에 가서 뭘 꺼내다 준다. 이 씨라는 호칭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내게는 딴 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보니 0씨라는 호칭이 자주 사용되는 듯 했다. 서로의 호칭에 대해 통일이 없어서 그럴 것이었다. 호칭하나로 서로의 기분을 나쁘게도 하고 좋게 하기도 한다. 형님, 0형, 동생, 아우님, 이라는 좋은 표현이 있지 아니한가. 어이, 0씨, 00씨, 00야, 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의 품위도 지키면서 상대방도 생각해주는 상호간의 호칭은 조직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할 것이다. 막내 둘이 가끔 불러주는 '완 식이 형'이란 말, 얼마나 정감 가는 말인가.

나는 후줄근한 땀을 안고 한 시간 반 이상을 담당 지역을 돌면서 쓰레기를 줍는다. 모자도 꾹 눌러쓰고 오로지 쓰레기를 찾는데 목표를 둔다. 나이 들어 운동도 되고 누구 말대로 돈도 생기고 일거양득이다. 철길 밑에는 운동기구도 있고 쉼터도 있다. 반달 모양의 탁자와 대리석으로 된 의자 위는 전날 밤에 회식을 했는지 다양한 메뉴를 펼쳐놓고 간 흔적이 자주 목격된다. 이곳저곳 나뒹굴고 있는 소주 병, 막걸리 병, 안주부스러기, 닭튀김 찌꺼기, 담배꽁초, 과자봉지, 등. 으레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 사고방식들이 인식되어 버린 듯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풍경들. 심한 악취를 풍기는 족발담은 그릇도 조경수 안에 숨어있어 꺼내다보면 절로 얼굴이 일그러지고 한숨까지 나온다. 정말 이곳 지역에 사시는 분들의 공중도덕에 대한 개념이 이것뿐이 안 되는가 싶었다. 물론 일부분이겠지만 이로 인해 우리가 치우기까지는 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온갖 악취와 고통을 감내할 수 밖 에 없다. 음식물을 토해놓은 탁자를 치우는 경우도 많다. 더러는 애완견의 배설물들을 검은 비닐봉지나 흰 봉지에 넣어 자전거 도로 위나 나무 밑에 놓고 가는 경우도 있다. 자전거도로 한 복판에 뎅그러니 의젓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개똥은 추상화의 소재가 될 만한 운치까지 풍긴다. 차라리 담배꽁초는 봐줄만하다. 하지만 아무데나 냅다 쏟아 뿌려버린 음식물찌꺼기를 치우다보면 머리도 마음도 어지럽다. 하기는 이런 사람들로 인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 날도 역시 내 담당구역을 이 잡듯이 뒤졌다. 어디서 꼭꼭 숨어있는 쓰레기야, 내 눈에 띠기만 해봐라 하는 심정이 된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쓰레기를 줍다보면 내 자신이 절에 들어가 도를 닦는 수도승이 된 듯하다. 음식물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아무데나 버리는 행위만은 제발 해주지 말아주었으면. 소주병을 난도질하여 공원풀밭이나 도로가에 패대기치지는 말아주었으면. 그래서 이런 문구도 등장한다.

"난, 네가 쓰레기를 버리는 걸 알고 있다."

"쓰레기 버리는 인간은 000다. 잡히면 죽는다."

"쓰레기 인간 보소 이곳에 쓰레기 버린 ***. 잡히면 손목아 지 %%%, 당신 집 앞에 종량봉투 사서 버려라."

공원관리원이라면 쓰레기에 대한 법률 조항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메모해 두었다. 폐기물관리법 제 8조(폐기물의 투기 금지 등) 무단투기는 개인은 과태료 20만원 사업장은 100만원,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은 과태료 부과금액의 20%라는 것도. 담배꽁초 투기는 과태료 5만원이다. 운행 중 도로에 쓰레기 무단 투기 차량은 교통법 제68조 제3항 제5조(운전자)에게 범칙금 5만원과 벌점 10점에 해당되는 응분의 대가를 치른다.

그 날은 최선을 다했다. 평소 하나만 쓰던 봉투를 2개나 사용했다. 도로 가 전봇대 옆에 놓아두면 시청 환경관리팀에서 다음 날 수거해간다. 그 날은 오후에 공원소재 나무들의 전지작업이 있었다. 기계톱으로 자르고 다듬어 모양을 내고 하는데 그 소리가 장난 아니다.

소리 없는 기계는 없는 것일까. 여럿이 덤벼들어 하니 금세 진전이 된다.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제 할 일을 알아서 척척 하는 동료들의 모습들, 진지한 삶의 자세가 묻어난다.

그날 업무가 끝나고 자전거로 집에 가는 중이었다. 내 담당지역은 자전거 도로도 포함되는데 매번 그 길을 이용한다. 그런데 내가 담아놓은 쓰레기봉투 2개가 시야에 들어와야 하는데 하나 뿐이 없다. 순간 그 옆을 보니 한 무더기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가 쓰레기봉투를 가져가려고 다 쏟아놓은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의 소행일까. 나는 내려서 소지하고 있던 비상용 봉투에 다시 담아 전봇대 옆에 갖다 놓았다. 설마 이것까지 다시 쏟아놓지는 않겠지. 처음 겪는 일. 어이가 없지만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게 얼마 후에 다시 일어났다. 이번엔 애당초 놓은 자리에서 오십 미터 가량 떨어진 철길 밑에 있는 수로 위 경사진 곳이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2열로 쭉 쓰레기가 도배를 하듯 널려있었다. 한 숨이 나왔다. 온갖 더러운 내용물을 마스크와 안경을 쓰고 일일이 새 봉투에 담았다. 어떤 사람의 행동일까. 전혀 죄의식을 못 느끼거나 양심을 저당 잡힌 사람이겠지.

낭자야심(狼子野心)이라는 한자성어가 문득 생각난다. 양심이 없고 배려나 사회적 질서에 무관심한 이리 같은 야성이 몸에 배어있어 쉽게 교화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말일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재미가 갈수록 붙는다. 집에서 나와 길을 더듬으면 약간의 경사진 거리 1키로 미터는 자동으로 간다. 바람을 안고 씽씽 달리면 엉덩이는 신이나 옴지락옴지락 거린다. 자전거 타는 기분은 타보지 않으면 모른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인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무겁고 길이가 아주 장난 아닌 짐 운반용 자전거를 겁도 없이 뒤뚱뒤뚱 거리며 배우던 그 시절이었다. 삼년 전에 폐암으로 삶을 마감한 막내 동생을 그 자전거 뒤에 태우고 가다가 운전을 잘못하는 바람에 도랑 속으로 풍덩 빠뜨린 적이 있다. 막내 동생의 나이 네 살이었다. 자전거를 타고가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혼곤하게 가슴을 여민다. 주조장의 술 배달 아저씨도 나와 똑 같은 자전거로 술통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주막이나 식당에 배달했다. 아는 분에게서 공짜로 받은 허름한 중고자전거, 꿀 허벅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까 생각도 해보지만 나는 틀린 것 같다. 선임동료는 벌써 허벅지 둘레가 손가락한마디 쯤 늘었다며 은근히 자랑한다. 미상불 나도 허벅지 힘이 불쑥 늘어난 것을 느낀다. 경사진 높은 길도 안 쉬고 올라간다. 중고 자전거를 받은 후 수리비가 무려 10만원이나 들었다. 브레이크, 뒷바퀴 버팀대, 짐 받침대를 갈았다. 얼마 전엔 앞바퀴에 펑크가 나 때웠다. 동료들 중엔 내가 제일 서툴다. 3개월도 안되었는데 벌써 세 번의 전복 사고를 당하고 한 번의 인사사고까지 일으켰다. 그 중 한 번의 인사 사고는 공원관리사무실 입구 모퉁이에서 일어났다. 오전에 담당구역을 청소하고 동료 관리사무실에 들러 얼굴을 씻고 화장실을 다녀 온 후 다시 공원관리사무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무실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화장실에서 나오던 팔십대 초반쯤 보이는 노인의 발을 밟고 손을 스쳤다.

"아니 어떻게 자전거를 모는 거요?"

이거 큰 낭패가 아닌가. 머리가 아득했다.

"아, 제가 자전거가 아주 서툴러서요. 죄송합니다."

나는 바로 사과했다. 그 노인은 나를 위 아래로 째려보더니, 자신의 손 등을 쓱 쳐다본다. 아무런 상처도 나지 않았다.

"가세요."

다행이지만 기분은 씁쓸하다. 그 날은 집에 가서도 마음이 꺼림직 했다. 그 모퉁이가 내겐 위험지역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 삶의 기운이 퐁퐁 솟아오르고 세상의 모든 길이 몸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충만감을 느낀다. 낡은 흔적들을 삭혀서 모두 흘려보내는 기분이 된다. 가슴은 뻥 뚫리고 세상이 모두 내 것 같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울타리는 측백나무였다. 그 나무 사이사이로 번지르르하게 뚫린 개구멍이 군데군데 있었다. 우리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군것질할 것을 사러 점방에 갔다. 교문까지는 거리도 멀뿐 아니라 주변의 시선도 피해야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개구멍을 더러 이용했다. 이번에 근무하다 나온 공원관리사무실은 그 가는 길이 회양목 울타리를 따라서 비스듬히 나 있다. 동료 4명이서 자전거로 관리사무실을 가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갑자기 대오를 이탈해 직선 코스로 내달린다. 시원하게 달리는 그 동료 앞에 뻥 뚫려진 울타리 사이의 개구멍. 그때에야 비로소 알았다. 지금도 개구멍은 있다는 것을.

한자 좀 몇 자 안다고 고사성어 몇 개 기억하고 있다고 가끔씩 써먹다가 상대방의 되물음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나 보다 8살 아래인 S동료는 인생을 달관한 수도승 같은 인상에 키도 농구선수같이 훌쩍 커 내심 부러워했다. 자전거를 타고 같이 가는데 빙그레 웃으며 말 한다.

"완 식이 형, 일전에 말한 상선약수 있지요. 바로 개구멍이 아닌가요? 왜 그런 구멍을 막는지, 원. 사람들이 가고 싶은 데로 길이 나면 얼마나 좋겠어요."

개구멍이 뚫렸다는 건 그곳이 바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기에 가장 좋은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스라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려 주는 그 동료가 다시 보였다. 그 땐 얼마나 개구멍을 많이 드나들었던가. 번지르르하게 난 정겨운 좁디좁은 길을.

아파트단지내도 화단 가운데를 가로질러 반들반들한 길이 곳곳에 나 있다. 주민들이 주로 다니는 길이다. 이에 부응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그런 곳을 찾아 뜀 다리를 놓는다. 처음엔 생각지도 못한 곳에 만들어진 징검다리인 셈이다. 예전의 개구멍이나 샛길을 양성화하는 것일 것이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영어로 Out of control 이라는 말인 통제 불능과도 통한다. 노래로는 비틀스의 Let it be 가 있다. 그대로 내버려 두세요 라는. 자기 욕심을 위해 어린 자녀에게 억누르며 시키는 적성에 안 맞는 공부도 이 같은 상선약수의 말에 상충한다. 보고 싶은 사람 만나고, 하고 싶은 공부 하고, 가고 싶은 데로 가고, 마음에 없는 말은 안하고, 먹고 싶은 것 먹고 하는 게 바로 상선약수 아니던가.

개구멍은 상선약수다.

국민기초질서 확립차원에서도 지금 우리 주변엔 제재나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경우가 적지 않다. 분명 관련 법조항이 있건만 왜 실천을 못 하는지. 양심을 버리는 사례가 발견되면 이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업무 중엔 호주머니에 주머니칼을 가지고 다닌다. 공원이나 녹지대에 이따금 걸려있는 현수막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건설회사의 분양공고는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 제거하면 또 걸고 걸면 또 제거하고. 식당개업 현수막도 보이고 더러는 가정은 행복의 궁전, 미혼 남. 여, 재혼 하실 분은 전화 달라는 안내문이 운동기구와 지하철 기둥을 도배한다. 어느 땐 며칠 놔두고 싶기도 하다. 차라리 금요일 오후에 붙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이틀은 제거하지 않으니까.

청소 담당 업무는 일종의 사명감이나 봉사심이 없으면 쉽게 지치기도 하고 자신이 황폐해질 수 도 있는 직업이다. 경제적 이유로 이 일에 나왔던 소일거리로 나왔던, 일 할 때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가 담당하는 곳엔 비둘기 들이 지하철 천장에 많이 살고 있다. 그 천장에서 무더기로 내싸지르는 비둘기 똥들은 마치 핵폭탄 같은 생각이 든다. 비가 오는 날은 옻오른 곳에 약 쳐 발은 듯 여기저기 몽글 몽글 흩어져있기도 하고 떼로 뭉쳐 있는 똥들을 치운다. 삽으로 마치 솥에서 누룽지 긁듯 해 모은 비둘기의 배설물. 물감 짜듯 버려진 평화의 전신이다. 비둘기 담배까지 생겼을 정도로 우리에겐 가까웠던 존재가 어느 순간 혐오의 대상으로 변했다. 일체 모이도 주지 말라는 경고의 글도 이젠 어색하지 않다. 격세지감 隔世之感인가. 상전벽해 桑田碧海인가.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산새들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예전의 노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가을의 끝자락이 되면 무상이란 단어가 꾸역꾸역 내 마음을 파고든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휴지통에 버려지는 물건처럼 낙엽도 그렇게 느껴진다. 저렇게 나동그라진 흔적들을 지우기 위해 또 사람들은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엉금엉금 기어오는 '게'처럼 대왕 참나무의 잎들은 얼마나 징그럽게 다가오는가. 담당지역을 청소하다보면 별의별 상념에 잠기게 된다. 이곳 지역의 시화인 황매화 사이사이로 검고 흰 비닐 들이 끼어져 있다. 오래된 음식물인 경우도 있고 빈 소주병과 과자부스러기가 들어있을 때도 있고 먹다 남은 닭튀김이나 만두가 포장된 채 그대로 있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인가. 지하철 역 입구 바로 건너편에 있는 회양목 울타리 안쪽에 00식자재 표시가 된 하얀 비닐 봉투가 보였다. 집게로 들쳐보니 소주병 깨진 게 들려진다. 옆엔 4홉들이 병맥주가 다섯 병 있었다. 빈 병 인줄 알고 들었는데 묵직하다. 새 것이다. 카스. 나는 그대로 놔두었다. 혹시 누가 잠시 두고 간 것은 아닌지 싶어서였다. 그 때가 오전 9시. 담당지역을 다 돌고 나서 자전거로 공원관리사무실 가는 길에 흘낏 보니 아직 그대로 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걸 다 쓰고 버린 쓰레기로 생각했나보다. 사무실에 와서 S동료에게 그 사실을 말하니 사무실에 갖다놓으라고 한다. 새것이고 어차피 치워야 할 것인데 그렇다고 새것의 마개를 따서 버리는 것도 아깝다. 누군가 버린 새것은 가끔은 의심을 하게 된다. 혹여 그 안에 무엇인지 모를 독약이라도 타거나 하지 않았을까 하고. 반장이 하는 말.

"갖다 놓으세요. 혹시 다른 동료들이 업무가 끝나고 출출할 때 마실지도 모르니까요."

점심 때 C동료와 노인복지관으로 식사하러 가면서 그 병들을 가져왔다. 타인의 물건을 남몰래 훔치는 심정이었다. 주변을 살폈다. 관리사무실 냉장고 안에 넣어둔 그 맥주들은 며칠 후 말끔히 치워졌다.

얼마 전 부터 자전거로 집에 가 점심하던 것을 노인복지관으로 바꿨다. 2천원을 받는데 나이 만 65세 이상 주민이면 이용할 수 있다. 회원증과 2천원을 내면 식권을 준다. 지하에 있는 식당은 언제나 줄을 서야 한다. 자가용을 몰고 오는 사람, 부축을 받으며 오는 사람, 휠체어를 타고 오는 사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점심을 즐긴다. C동료는 나와 같은 산불감시원 출신이다. 월남 참전 용사로 유공자 증이 있어 식사는 공짜다. 점심때가 되어 그 동료 차를 타고 노인복지관에 가는 순간은 편안하다.

싱 씽 싱, 자전거 바퀴를 타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부챗살처럼 올라온다. 아침 8시 10분이다. 고등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과 남학생 한 명이 지하철 밑 반달 탁자에서 얼굴을 마주보며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40분 후 다시 와 보니 학생들이 떠난 그곳은 예상대로였다. 빈 소주 병 3개, 라면 몇 올 남은 종이그릇 1개, 파랑색 음료수 한 병, 캔 맥주 하나, 아이시스 물병 하나, 진한 입술연지가 묻은 종이컵 둘, 검은 비닐에 안겨있는 빈 종이컵 5개가 널 부러져 있었다. 학교에 있을 시간인데 지하철 밑 탁자에서 술잔을 기울였던 그 학생들, 사자소학을 예절기본서로 알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울컥한 마음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마침 지나가던 칠십대 중반의 남자분도 혀를 찬다.

"참나, 에이 000들, 아직 멀었어."

손가락이 여전히 안 좋다. 아침에 일어나면 붓고 저리고 잘 쥐어지지도 않는다. 이곳지역에서 통증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Y병원을 찾았다. 원장의 경력도 화려하고 또한 각종 시설이 최신의 장비인 듯해 믿음이 간다. 의사가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말한다.

"선생님, 손가락 퇴행성관절염입니다. 약 5일 분 지어드릴 테니 드시고 물리치료 받으세요."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반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힘들지 않은 일을 배정해달라고 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동료들에게 손가락 이상을 얘기했다. 무거운 것을 드는 일은 좀 배려해주었으면 하는 의도였다. 통증은 심해오고 일은 해야 하고 그렇다고 쉴 수도 없고 참으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다.

얼마 전이었다. 공원 내 나뭇가지 줍기가 업무로 주어진다. 나무들의 죽은 가지가 여기저기 흩어져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산책에 방해가 된다. 그 날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데 갑자기 애완견이 '왕왕' 짖으며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사십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애완견 3마리를 데리고 산책하고 있었다. 한 동료가 손을 내저으며 가라는 시늉을 했다. 막무가내로 다가온다. 으르렁 거리며 접근하는 애완견이 금방 물기라도 할 것 같다. 여자는 아무 대책도 없이 쳐다보고만 있다. 화가 난 동료는 '이런 놈의 000'하면서 나뭇가지를 들고 쫓았다. 마치 때려죽일 듯하다. 계속 따라 붙는다.

"아줌마, 개 좀 목줄 해 갖고 다니쇼."

"000, 빨리 와."

"아, 이런 놈의 000, 죽여 버릴까보다."

아마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무슨 사단이 났을 것이다. 공원 한 쪽에 걸려있는 현수막.

"애완동물 출입 시,

목줄 착용 및 배설물 처리를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위반 시 도시공원 관리법 제49조에 의하여 과태료 10만원이 부과 될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000시 공원 녹지 과"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그 여자,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개들이 생산한 똥들이 풀 섶을 뒤 덮고 있다. 싸지를 때 누가 보면 치우지만 그렇지 않으면 방치하고 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똥들을 치우지 않는다고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소유자들이다.

스스로 알아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양심적인 태도가 소망스럽다. 옆의 동료는 어느 할아버지의 사례를 든다. 그 할아버지는 매일 개를 데리고 다니는 데 손잡이 달린 냄비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다. 개가 가다 낑낑 대거나 한 쪽 발을 들려고 하면 바로 냄비를 들이댄단다. 다시 뚜껑을 닫고 운동을 하는 그 할아버지 같은 사람도 있다. 제발 배변위생봉투라도 가지고 다녔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젠 개똥들은 내게 정겹게 다가서는 친구 같다. 내가 담당하는 34공원을 생각한다. 공원 앞 인도에 음식물 수거함이 있다. 이곳 지역 사람들은 그 옆에 마구 온갖 쓰레기를 버린다. 사업장과 단독주택은 쓰레기 배출장소가 사업장 앞이나 주택 앞 도로변이다. 그럼에도 이곳 지역 사람들은 공원 앞 도로변에 내놓는다. 자주 공원 경계선을 넘어와 흉물스럽게 나뒹굴고 있다. 비닐에 곱게 싸서 놓고 가는 것은 그래도 봐줄만 하다. 온갖 잡동사니는 다 모여 있다.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해 전혀 개념이 없는 사람들의 행위 같다. 종량제 봉투를 사용한 것은 이따금 가뭄에 콩 나듯 보인다. 아마 수없이 민원도 들어갔을 것이다. 완전히 쓰레기천국. 내가 이곳 지역을 담당한지도 벌써 2개월이 넘는다. 그간 딱 한번 깨끗하게 청소된 적이 있다. 말끔하게 정리된 도로를 보기는 처음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 때뿐이었다. 다시 쓰레기들이 두런두런 모여들기 시작했다. 현수막이라도 붙이면 어떨까 생각했다. 담당공무원도 그런 생각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차라리 공원관리 담당인 내가 하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지금까지 이 지역을 담당한 동료들은 얼마나 고민했을까. 담당지역 변경만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청소, 봉사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간 나는 봉투의 빈 여백만을 채운다는 입장에서만 조금씩 그 쓰레기들 중 일부를 수거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 하리라. 무단 투기 단속반이라도 편성해서 거리를 정화하겠다는 어느 구청의 발표를 본 것도 생각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 내 집 앞 내 거리를 깨끗하게 해야겠다는 가슴에서 우러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인권이 강화되고 민원인 중심의 행정이 되다보면 정작 해야 할 일이 왜곡되기도 한다. 자기위주로 생각해서 주장하는 민원들이 적지 않다.

낙엽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아파트 사이길 공원에서 낙엽을 치우고 있었다. 갈퀴로 긁고 부로어로 불고 자루에 차곡차곡 쓸어 담고 있었다. 이때 어느 칠십대 여인이 우리에 다가온다.

"여보세요. 이00 씨를 찾는데요. 아파트 몇 동인지 몰라서요."

옆에 동료는 노인정을 찾아가보라고 한다. 말없이 돌아선 그 여인은 발걸음을 옮긴다. 다시 또 낙엽제거작업을 했다. 삼십 분 쯤 지났을까. 다시 또 그 여인이 우리에게 온다.

"아저씨, 이00 씨를 찾는데요."

"아주머니, 언제 이사 오셨어요?"

열흘도 채 안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여인을 데리고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갔다. 관리소 여직원은 최근에 입주카드를 작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다시 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사 오기 전 어디서 사셨지요?"

경기도 00에서 사셨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해당 주민자치센터에 물어보면 되겠네요.' 하고 물었다. 관리소 직원이 얘기한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서 아무나 안 알려준다는 것이다. 파출소에 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여인을 데리고 인근 000경찰서 00지구대를 향했다.

"아주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네, 저 오십이에요."

칠십대 중반 이상은 되어 보이는데. 아, 이분 치매로구나. 내가 주민등록증이라도 있는 가 물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파출소에 들어가니 경찰관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긴다. 그 여인의 남편인 할아버지가 아마 신고한 모양이었다. 뒤이어 두어 명의 경찰관이 들어온다. 할아버지 집에서 오는 듯했다.

"이분 집이 어디시죠?"

내가 물었다. 00 주공 2단지라는 것이다. 이곳은 전연 다른 B아파트단지인데. 선임으로 보이는 경찰관이 나의 연락처를 물었다. 내가 왜 그러냐고 하자 혹 사례를 할지 모르니 그런다는 것이었다.

"네, 000-0000-0000, 공원관리원입니다."

그 경찰관은 메모장에 적는다. 경찰관은 곧바로 그 여인을 데리고 나갔다.

나는 문득 이미 고인이 되신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를 생각했다. 작은 아버지는 치매증세가 심해져서 벽에 0칠을 하는 등 심각한 모습을 보이셨다. 결국 작은 어머니의 결심에 마침내 형벌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여보, 우리 다 같이 죽읍시다. 얘들 더 이상 고생시키지 맙시다. 여기 농약 어서 마셔, 어서."

두 그릇의 농약을 놓고 그렇게 삶의 종지부를 찍으려고 시도했다. 작은 어머니가 먼저 마셨다. 치매라서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작은 아버지는 농약을 안마셨다. 작은 어머니만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 일, 그 선연한 아픔의 칼날이 눈앞을 스친다. 작은 아버지는 그 후 큰 딸과 함께 살다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오늘 낙엽을 치우면서 그 여인의 모습을 보고 다시금 느낀다. 암보다 더 무서운 치매 걸리지 말아야 된다. 주소와 연락처를 적은 목줄도 치매환자자신이 떼어버린다고 한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목에 줄보다는 차라리 팔뚝에 연락처와 이름을 문신하는 게 어떨까.

무표정하고 아무 감정도 없는 그 여인의 얼굴, 섬뜩하다. 쓸쓸한 인생의 우리네 뒤안길을 보는 듯하다.

담당구역 청소를 마치고 전 담당구역 관리사무실에 들렀다. K동료가 사무실 밖에 나와 있다. 이때 사십대 중반의 여인이 달력을 한 부 들고 사무실 앞에 와서는 곱게 말을 꺼낸다.

"아저씨, 뵙고 싶었는데 올 때 마다 안계시데요."

나는 공원관리 하는데 수고가 많으시냐며 일부러 들른 듯 보이는 그 여자를 참 고맙다고 생각했다.

"달력 주시려고요."

동료는 웃으면서 맞이한다. 돌아온 답변은 전혀 예상외였다.

"아저씨, 여기 불이 항시 켜있던데 왜 안 끄시죠? 전기세가 아깝지 않아요?"

보니까 여자 화장실이다. 불이 켜있다. 공원관리원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다.

"아, 어떻게 남자가 여자화장실을 맨 날 점검하면서 끈대요?"

"아저씨, 시청에 민원 넣을 거예요."

동료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벌써 이런 행위가 한 두 번이 아닌 모양이다. 여자화장실인데 맨 날 화장실 이용여부를 확인하고 전기를 끄라는 그 여자의 요구사항, 정말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운 화장실, 좀 밝게 하면 어때서 그럴까. 세금 내니까 할 말은 해야겠다는 그 취지는 좋지만 이건 좀 너무 하다. 조금 있다가 삼십대 후반 쯤 보이는 여자가 유모차에 흰 개를 태우고 지나간다. 다른 동료가 그걸 보고 눈 쌀을 찌 뿌린다.

"그냥 넘어가 왜 그래."

나는 그 말을 불쑥 내 뱉었다.

34공원이 갈수록 지저분해진다. 각종 쓰레기들이 공원 경계선을 넘어와 고물상을 방불케 한다. 나름 안내문이라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A4용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곳은 여러분의 소중한 공원과 녹지입니다. 제발 생활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마구 버리지 마십시오. 공원관리원 드림"

코팅을 했다. 3장을 만들었다. 다음 날 출근해서 반장에게 보여주자 처음엔 망설이는가 싶더니 해보라고 한다. 옆에 S동료도 있었다. 한마디 덧붙인다.

"빌라 000들"

안내문을 쓰레기가 웅크리고 있는 곳 바로 앞 나무에 끈으로 묶었다. 지저분한 도로변 잡동사니 쓰레기를 치웠다. 전후의 모습과 안내문을 스마트 폰에 담았다. 내용을 반장에게 문자로 보냈다. 잠시 후 반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공원관리사무실 밖에서 점심시간 전이라 모두 서성거리고 있었다. 내게 온 반장은 낮 빛이 싹 변하면서 몰아붙인다.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이 완 식 씨, 너무 앞 서 갑니다. 여기 들어 온지 얼마나 됐어요? 왜 그리 앞서 갑니까? 공원관리원 이름으로 안내문을 붙이지 마세요."

아침에 안내문을 붙이겠다고 의견을 분명하게 말 했을 때 허락하지 않았던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붙여도 좋다고 해서 그리했고 34공원이 너무 지저분해 안내문이나 붙여봐야겠다고 생각한 것 일 뿐임을 조용히 얘기했다. 동료들의 시선이 꾸역꾸역 모여든다. 다시 반장이 내게 누그러진 목소리로 주의를 준다. 도로는 미화원소관이며 그것까지 신경 쓰지 말란다. 다시 덧붙인다.

"이 완 식 씨, 앞으로는 너무 앞서가지 마세요. 그리고 다른 건도 있는데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짐작이 갔다. 반장은 얼마 전의 일로 인해 내게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들어 온지 몇 개 월 된 풋내기가 도대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감히 훈계하느냐는 투였다. 나이든 사람은 그 자체로 비하를 당하게 되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동료들은 모두 예순 살이 넘었다. 반장의 부모와 비슷한 나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반장이 내게 와서 내일까지 안내문을 제거하라고 한다. 얼마 전에 내가 보낸 한 통의 서신, 물론 문자메시지로 보냈다. 일언반구의 답변도 없었다. 그 서신을 쓰게 된 동기는 이렇다. 몇 명이 점심시간에 주변에서 식사를 하는데 시간적으로 좀 이른 시간이라 보는 눈도 있으니 멀리 가서 식사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바로 그날 그런 당부를 아랑곳 하지 않고 주변에서 식사를 한 모양이었다. 이에 발끈한 반장이 점심시간을 20분 늦춰버렸다. 결국 피해를 보는 사람은 자전거로 집에 가서 점심을 하고 오는 동료들이었다. 몇 명의 잘못으로 다수가 불편을 겪고 있다. 누군가 이에 대해 선처해달라고 부탁한 듯 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것이다. 결자해지, 맺은 자들이 풀어야하는데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불만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누구하나 앞장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종내는 내가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반장에게 문자로 보냈다.

0반장님에게 드리는 말씀

요즘 오후 다섯 시 경에 퇴근을 하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둠이 빨리 찾아오니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려면 조심스럽습니다. 공원관리원의 일은 소중한 시민의 휴식공간을 좀 더 청결하고 아름답게 하는 데 있겠지요. 적지 않은 공원과 녹지 등의 관리와 각종 민원해결을 혼자 주관하시느라 고군분투하시는 0반장님의 애쓰시는 모습. 가끔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0반장님을 보면서 사명감과 봉사라는 단어가 살아있음을 떠올립니다. 낙엽 수거를 위해 송풍기로 불고 갈퀴로 긁어모으고 마대자루에 담아 상하차를 해서 옮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러는 젖어있고 때로는 썩어있는데다 미세먼지까지 잔뜩 안겨있는 냄새나는 낙엽. 열악한 환경에도 모두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일 하시는 동료 분들의 진지함에서 저는 참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근로계약기간도 한 달 하고도 며칠 남았습니다. 같이 일하시는 동안 화기애애하고 훈훈한 정을 나누며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것은 모두의 희망이겠지요. 오전에 담당구역을 청소하고 나면 오늘 오후에 무슨 일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간 전지작업, 풀 제거, 그레이 팅 청소, 공장단지 주변 청소, 연못 청소하기, 의자 페인트칠 벗기기와 벗긴 곳 다시 칠하기, 보도블록 깨진 것 보수하기, 나무 가지 줍기와 가지치기를 주로 했었지요. 요즘은 낙엽수거로 거의 결정된 일이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일을 해서 시간 내에 맞출까 동료 분들은 부심합니다.

지난번의 점심시간 변경 이후로 대부분의 동료 분들이 집에 가 식사를 하고 오는 데 조금의 틈이나 짬이 없어 보입니다. 부탁드리오니 종전처럼 점심시간을 허락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매식을 하는 분들은 주변에서 식사하지 않고 될 수 있으면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점심을 해 혹여 발생할지모르는 불미스런 민원은 추호도 없도록 하는 전제하에서 말입니다.

고령임에도 정말 치열하고 진지하게 공원관리 일을 하시는 동료 분들입니다. 남은 근로계약기간 한 달 남짓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여 보람 있는 마무리가 될 수 있기를 학수고대합니다. 공원관리원의 일사불란한 마음가짐은 오직 0반장님의 얼굴표정과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달려있습니다. 일할 맛 나는 상큼한 분위기속에 공원관리원으로서 근무한 추억이 오래 오래 저희들 가슴에 남아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주셨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완 식 드림

내 간곡한 글을 읽고 반장이 흔쾌하게 받아줄 줄 알았다.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 오히려 앞장서 간다느니 새까만 공원관리원이 건방지게 하늘같은 반장을 회유하려한다는 의미로 비쳐져 미운털만 옹골지게 박힌 꼴이 됐다. 어느 동료의 말이 절절히 다가온다.

"여기 하도 말이 많아 놔 갔고 나대봤자 하나 이득 없어.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한쪽 귀로 바로 흘러버려."

"맞아"

즉시 응수하는 동료들.

얼마 전 00근린공원 어린이 놀이터에서 낙엽수거작업을 했다. 갈퀴와 플라스틱 삽으로 듬뿍 담아 마대자루에 넣는다. 마른 낙엽은 한 번 이상 눌러주어야 한다.

"한번 누르자고요."

자루 잡는 한 쪽 동료와 나는 손을 각개로 하고 누른다. 낙엽이 풀썩 쪼그라진다. 한두 번을 더 넣은 후 하는 말.

"됐어요."

옆에서 마대자루를 묶는 동료에게 인계한다.

갑자기 시야에 야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 들어온다. 놀이기구에 청색홈통이 있는데 꼭 남자의 거시기 같다. 버섯 모양의 맨 끝 부분. 어린이들이 그 안에서 나오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쑥쑥 잘도 나온다. 어쩜 그리 생각을 잘 했을까. 마디마디 주름이 진 대롱이다. 참 굵다. 옛날에 서당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자의 기초서적, 사자소학의 첫 구절이 생각난다.

"부생아신(父生我身) 모국아신(母鞠我身)"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도다. 대롱을 통해 나오는 어린이들. 참으로 멋있는 발상이 아닌가.

이제 근무할 날도 하루 남았다. 영하 15도를 웃도는 날씨, 오전 청소를 하고 오후엔 3시 까지 대기하란다. 몇 명씩 나누어 몇 군데 있는 공원관리사무실에 가 있으라는 것이다. 마지막 낙엽수거작업을 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과거 이곳에서 반장을 역임한 바 있는 B동료와 전입동기 K동료와 내가 한 조가 되어 0역 관리사무실에 배정됐다. 지갑을 주웠을 때는 어떻게 했느냐고 B동료에게 물었다. 그 동료는 처음에 지갑을 주웠을 때 인근파출소에 습득물이라면서 전달했다고 한다. 경찰관 하는 말.

"이 지갑에 돈 없었어요?"

"네, 없었어요."

숫제 자신을 의심하는 말투로 물어보더라는 것이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그 자신도 지갑을 잃은 적이 있는데 나중에 우체국을 통해서 주민등록증과 카드3장을 돌려받았단다. 택배비 3천원을 부담했다. 이미 모든 것을 재발급 받은 후였다. 그 후론 지갑을 발견하게 되면 바로 쓰레기봉투에 담아버린다고 한다. 타인의 개인정보가 잔뜩 있는 지갑을 보면 나는 거부반응이 일어난다. 알고 싶지 않은 타인의 정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쓰레기 소각장에 들어가 깨끗하게 소각되는 게 차라리 좋다. 핸드폰 역시 발견되면 하루나 이틀 쯤 지켜본다. 물건을 잃은 소유자는 자신이 들른 장소를 다시 가보게 마련이다. 그래도 있으면 가까운 핸드폰 대리점에 가서 확인 후 본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한번은 쥐똥나무 울타리 옆에 대형 가방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가방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했다. 물컹하고 이상한 것이라도 있을까 두려웠다. 저것을 열어봐야 하는지 어떤지 갈등이 생겼다. 그렇다고 안 치울 수도 없다. 나는 그 때 며칠을 지켜보았다. 그대로 있었는데 일주일 쯤 지나니 가방이 칼로 옆구리가 터져 있었다. 나는 빈 가방을 100리터 봉투에 담아 전봇대 옆에 내 놓았다. 채 3분도 안되었다. 환경정화 차량이 멈추더니 재빨리 차에 싣는다. B동료는 가방을 발견하는 즉시 거리 전봇대 옆에 내놓는다고 한다. 진작 물어볼걸 그랬다.

지난 금요일, 서로의 석별을 나누기위해 회식을 했다. 맛이 있기로 소문난 000 정육식당. 그래도 5개월 간 같이 보낸 동료들이 아닌가.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었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값진 추억으로 여겨야 한다.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리며 공원 관리 일을 한 것은 천금을 주고도 얻지 못할 귀중한 경험이고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는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회식자리에서 한 동료가 건배사를 한다. 언젠가 프랑스 시인 구르몽의 시'시몬, 그대는 좋은가, 낙엽 밟는 소리가.'를 흥얼대던 동료다.

"인생무상"

내가 가만히 있자 묻는다.

"이형, 이어서 말해야지요. 아니 그것도 몰라요?"

그러면서 술 한 잔을 꺾더니 말한다.

"삶의 허무요. 허무."

소주가 유난히 달콤하다. 안 해본 일도 하고 걸러내지 못한 말도 들어보고 한 지난 5개월, 끊임없이 삶의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공원관리원 생활을 하며 내 자신을 숙성시켜서 그럴 것이다.

내가 제일 마지막 코스로 가는 34공원, 내가 떠나가도 또 누군가 담당할 것이다. 사람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기초질서 의식이 바로 잡혀지지 않는 한 늘 담배꽁초는 여기저기 나 뒹굴 것이고 먹다만 음식물찌꺼기와 한 물간 음악 테이프, 가방, 신발, 그릇, 병 등 잡동사니 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물상 같은 풍경들은 계속 그려질 것이다. 내다버린 자전거의 안장만 뚝 떼어서 가져간 주인 없는 자전거들. 흉물스런 모습으로 자전거 보관소 옆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기초질서위반에 대한 처벌을 엄하게 하든지 아니면 과거 반상회와 같은 제도를 이용해 계몽도 하고 서로간의 협조를 구해야 하지 않을까. 공원경계선에 담을 쌓고 벽에 동심의 세계를 그리고 그 밑에 꽃들을 심는 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산업용과 생활 쓰레기의 처리모습은 그 나라국민의 의식수준을 가늠하는 기본적인 척도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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