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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건들바위(立巖)와 삿갓바위(笠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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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전영권 대구가톨릭대 지리교육과 교수

고문헌에 전해오는 대구를 대표하는 바위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입암(笠巖)이고 다른 하나는 화암(畵巖)이다. 안타깝게도 입암은 사라지고, 화암만 남아 있다. 입암은 삿갓바위로도 불렸다.

15세기 대구를 대표하는 대문장가로 사가 서거정(1420~1488)이 있다. 서거정의 본관은 대구(大丘)다. 대구에 뿌리를 두는 서씨의 경우, 달성(達城) 서씨를 향파(鄕派), 대구(大丘) 서씨를 경파(京派)로 구분한다. 서거정은 자신이 생존했던 15세기 대구의 아름다운 풍광 열 곳을 칠언절구 한시 십 수로 지었는데, 그의 문집 「사가집」에 실려 있는 '대구십영'(大丘十詠)이 그것이다. 그중에서 제2영의 입암조어(笠巖釣魚)에 나오는 입암이 삿갓바위고, 이 삿갓바위에서 낚시하는 풍광을 한시로 묘사한 글이 '입암조어'(笠巖釣魚)다.

한때 대봉동 건들바위(대구광역시기념물 제2호)를 삿갓바위로 잘못 알고 있기도 했다. 건들바위는 기자신앙(祈子信仰)의 대상지로도 유명했다. 아기를 가지지 못한 부녀자가 여기 와서 치성을 드리면 아기를 가진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했다. 건들바위 역시 입암이지만, 한자로 표기하면 선바위(立巖) 의미를 가진다.

건들바위는 대구천에 의해 깎여 만들어진 바위 절벽으로 학술 용어로는 하식애(河蝕崖)다. 즉, 대구천변에 서 있는 바위인 건들바위를 중심으로 동편에 위치한 마을과 서편에 위치한 마을을 각각 대구부(大丘府) 하수서면(下守西面) 동변입암리(東邊立巖里)와 서변입암리(西邊立巖里)로 불렀다. 이런 내용은 '대구읍지'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대구지역을 비교적 상세하게 표현한 고지도로 18세기 초에 발간된 해동지도(대구부)를 보면 삿갓바위의 위치가 도청교 서편 부근(침산동)에 표시되어 있다. 예전에 도청교 주변에는 대구천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물줄기 하나가 신천으로 합류했다. 지금은 복개된 상태라 볼 수 없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또는 광복 이후의 개발 시절에 훼손돼 사라졌다고 한다.

「경상도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고문헌 '대구 편'에도 입암에 대한 기록이 나와 있다. "대구부에서 동으로 5리쯤 떨어진 신천변에 있다. 운석이 떨어져 이루어진 돌이다. 생긴 모양이 삿갓처럼 생겨 입암이라 한다."

「세종실록지리지」 '대구군 편'에도 나온다. "입암은 군 동쪽 2리가량 되는 신천(新川)에 있다. 돌이 높이 서 있고, 시속에서 삿갓바위(笠岩)라고 부른다. 세상에 전하기를 별이 떨어져서 돌이 되었다고 한다." 서거정의 '대구십영' 중 제2영인 '입암조어'(笠巖釣魚) 시에서 보면 삿갓바위 정체를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입암조어(笠巖釣魚): 삿갓바위에서 고기를 낚으며'

연우공몽택국추(煙雨涳濛澤國秋): 이슬비 자욱이 내리는 어두운 호숫가 가을날

수륜독좌사유유(垂綸獨坐思悠悠): 낚싯줄 곧게 드리우고 홀로 앉아 한가로이 생각에 잠겼네

섬린이하지다소(纖鱗餌下知多少): 미끼 아래 작은 물고기 다소 있음이야 알겠지만

부조금오조불휴(不釣金鰲釣不休): 금자라 낚지 못해 쉬지를 못 하네.

한시 내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삿갓바위에서 낚시하는 강태공과 주변의 풍광이 대구를 대표할 만한 경관이다. 그런데 건들바위는 탑처럼 생겨 폭이 좁고 길쭉하다. 게다가 운석처럼 단단한 재질이 아닌 약한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풍화도 많이 되었고, 여러 곳에 균열된 틈이 있어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바위 윗면도 좁아 낚시는커녕 올라 앉아 있기조차 거의 불가능하다. 생김새도 삿갓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그런데 대구를 소개하는 각종 홍보물에는 여전히 건들바위를 삿갓바위로 소개하고 있어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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