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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기자의 C'est la vie] 36년 간 봉사활동 우영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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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부터 대한적십자사에서 3만7천500시간 봉사…최근 LG 의인상도 수상
"타인에게 베푼 10배로 자신이 행복해 힘 될 때까지 봉사하렵니다"

36년 동안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반찬 나눔 등 자원봉사를 해온 우영순 씨가 7일 대구 수성구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단배추를 다듬으며 웃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36년 동안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반찬 나눔 등 자원봉사를 해온 우영순 씨가 7일 대구 수성구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단배추를 다듬으며 웃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imaeil.com

"마침 오늘 요리 재료가 시래기와 가지이군요.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반찬거리들이라 벌써 기분이 좋아지네요. 이렇게 보여도 식당 차렸으면 꽤 돈 벌었을 것이란 소리도 자주 듣는답니다."

7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범물종합사회복지관. 우영순(75·대한적십자사 대구 수성2·3가동 봉사회) 씨가 서둘러 앞치마를 두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일주일에 나흘씩 이곳에 나와 동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취약계층에 전달할 도시락 100여 개를 만든다. 1985년부터 대한적십자사에서 활동한 기준만으로도 그의 봉사는 무려 3만7천500시간을 헤아린다.

"봉사라는 게 하면 할수록 재미있어요. 반찬 나눔이든 자연보호 활동이든 재난구호 지원이든, 타인에게 베푼 10배로 자신이 행복해집니다. 자기 집이나 잘 챙겨라는 핀잔 듣지 않으려면 일단 저부터 부지런해져야 하고요."

우 씨는 그동안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1995년 상인동 가스 폭발, 2003년 지하철 참사, 2005년 서문시장 화재 등 대구에서 벌어진 대형 사고 현장은 물론 2003년 경남 함안 태풍 수해, 2007년 충남 태안 기름 유출, 2011년 강원 동해 폭설 복구 현장도 누볐다. 2002 월드컵, 2011년 세계육상선권대회 역시 자원봉사자로 참여해 성공적인 대회 개최에 힘을 보탰다.

사정이 딱한 이웃을 그냥 지나치는 법도 없다. 같은 동네에 증손자 형제를 홀로 키우는 할머니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선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반찬을 만들어 전했고 아직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지낸다. 자녀들의 통학 버스비조차 대기 힘들어 했던 한 결손가정에는 각계에 도움을 요청해 영구임대아파트 입주까지 도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 영향이 적지 않았던 것 같아요.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음에도 추운 겨울날 가난한 이웃에게 당신의 외투를 입혀 드리고 오신 분이셨죠. 다른 사람 집에 갈 때는 절대 빈손으로 가지 마라, 음식 대접은 꼭 따뜻할 때 해라 같은 말씀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요."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이다 보니 체력적인 부담이 적지 않을 법하다. 그런데 그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는 매일 두세 곳의 복지시설에 들러 봉사활동을 했다며 요즘 더 많은 이웃을 돕지 못해 안타깝다고 했다. 10여 년 전 양쪽 무릎 수술까지 받기도 한 터라 슬하의 자녀들도 이제 그만 쉬시라고 권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친다.

우 씨는 오히려 코로나19로 복지시설들이 문을 닫거나 운영을 축소하면서 지난해 몇 달 동안 우울증을 앓았다고 귀띔했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탓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못 자는 날들이 이어졌다고 한다.

"도시락 배달 봉사도 하지만 원래 걸어다니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요. 당연히 등산 같은 취미도 없고요. 그런데 이렇게 다시 복지관에서 나와 일하니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요.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봉사를 멈추지 않을 겁니다."

평생을 사회에 헌신한 그는 이같은 공로로 2005년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 2011년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 2019년 대구자원봉사 대상을 받은 데 이어 최근 LG복지재단으로부터 '의인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2015년 '국가와 사회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고(故) 구본무 회장의 뜻을 반영해 제정됐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받은 적지 않은 상금조차 모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쓸 생각이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왜 상을 주시는지 모르겠어요. 솔직히 자랑할 정도로 했는 것도 없고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도 있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경북 경산시 압량읍이 고향인 우 씨는 은행에서 퇴직한 뒤 함께 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강달수(79) 씨와 사이에 2남 1녀를 뒀다. 주변에선 부부가 봉사를 열심히 한 덕분에 자식들이 모두 성공했다고 덕담할 정도로 화목한 가정이다. 며느리 또한 적십자사 봉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인생 후배들에게 봉사를 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희 때는 요즘과 달리 여자가 사회생활 하는 걸 어르신들이 싫어했잖아요? 그런데 제가 이 일을 오래 해보니 가정주부들이 봉사활동을 하면 참 좋아요. 무엇보다 자기 일이 바쁘다 보니 남편이랑 부부 싸움할 시간이 없거든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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