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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종소리] 세 교황이 재위했던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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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 종(왼쪽부터)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1세, 요한 바오로 2세 종(왼쪽부터)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이재태 경북대 의대 교수

코로나19 감염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이탈리아에는 이미 1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코로나는 망자의 손을 잡고 뺨을 만지는 전통적인 마지막 인사도 허용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슬픔을 억누르며 그냥 참는 중일 것이다, 봄비가 내리던 3월 27일 저녁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홀로 서서 코로나로 비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 달라는 특별 기도를 올렸다. "짙은 어둠이 광장과 거리와 도시를 뒤덮었다. 우리 모두는 같은 배를 탄 연약하고 길을 잃은 사람이다. 모두 같이 노를 저어가며 격려가 필요한 가난한 사람들이다. 모두 하나가 되자"며 연대를 호소했다. 세상의 아픔을 위로하는 영적 리더의 권위를 보여 준 것이다.

교황은 13억 신도의 가톨릭교회 수장이자 바티칸 언덕에서 순교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이다. 초기 교황들은 로마의 주교로서 기독교의 전파와 교리의 판정 및 해결을 맡았고 중세 이후에는 유럽 역사의 중심이자 종교적 영주였다. 교황을 제외하고는 유럽 역사를 논의조차 할 수 없다. 강해진 세속 권력에 의해 흔들린 적은 있었으나 교황은 십자군 원정을 지시할 수 있을 정도로 왕과 제후를 뛰어넘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현대에도 가톨릭 신앙과 인권의 수호자로 알려져 있다,

교황이 서거하면 15일 내에 콘클라베의 비밀투표로 새 교황을 선출한다. 남자 신도는 누구나 피선거권이 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에는 오직 이탈리아인 추기경만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20세기 들어서야 변화되었다. 1978년 폴란드의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되었고 이어 독일의 베네딕토 16세와 현재 아르헨티나의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교황으로 선출될 때 모두 큰 교구의 주교였을 거라 생각하나, 과거에는 권력자의 아들과 성직자의 친척도 있었다. 로마 백작의 아들 요한 12세는 18세(또는 25세)의 나이에 즉위하였고, 베네딕토 9세는 20세에 처음 선출되어 3차례나 중임하였다. 이들은 세속적인 통치자와 교회 지도자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중세 이후 교황의 재임기간은 평균 10년이었다. 32년을 재임한 19세기의 비오 9세가 최장이었고, 요한 바오로 2세가 두 번째이다. 대부분 고령이었고 격무에 시달렸던 교황이 일찍 서거한 경우도 많다. 15일을 재임한 90세의 보나파시우스 6세를 비롯하여 1개월을 넘기지 못한 분이 9명이나 된다. 선출된 새 교황이 또 서거하여 같은 해에 세 분의 교황이 있었던 해도 12번이나 된다. 1978년 8월 바오로 6세가 서거하고 10월에 65세의 요한 바오로 1세가 선출되었다. 신망이 높던 그는 선출 직후 '왜 하필이면 나란 말인가?'라고 했다. 교황직의 무거움과 부담감을 말한 것이다. 그 요한 바오로 1세는 취임 33일 만에 서거하였고 그해 말 요한 바오로 2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해는 373년 만에 세 분의 교황이 재임했던 특별한 해가 되었다.

1978년 독일에서 만든 '세 교황의 해, 1978년'이란 주석종이 있다. 이 종을 제작한 장인의 속마음이 궁금해진다. 한 해에 인류의 위대한 스승을 세 명이나 모셨다는 기쁨을 남긴 것일까? 역병에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어른조차 없는 이 봄에 세 분의 교황께 우리의 갈 길을 여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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