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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일상중국] 항미원조전쟁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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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군을 주축으로 한 중국인민지원군이 1950년 10월19일 항미원조전쟁 참전을 선언하고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총사령관은 펑더화이 팔로군을 주축으로 한 중국인민지원군이 1950년 10월19일 항미원조전쟁 참전을 선언하고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총사령관은 펑더화이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0월은 온통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서 북한을 지원) 전쟁이다. 6·25전쟁을 중국에서는 '항미원조 전쟁'이라 부른다. 교묘한 언어 조작이다. 중국의 6·25전쟁 참여는 1950년 6월이 아니라 10월이었다. 펑더화이(彭德怀)가 지휘하는 중국인민지원군은 그해 10월 19일 압록강을 건넜다. 중공군의 첫 승리는 10월 25일로 기록된다.

시 주석 집권 후 단 한 차례도 제대로 챙기지 않던 6·25전쟁 참전 기념식이었다. 중국 최고 지도자의 참석은 장쩌민 전 주석 재임 때인 2000년 이후 처음이다. 시 주석은 23일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 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항미원조 전쟁은 '정의로운 행동'(正义之举)이었으며 위대한 항미원조 전쟁 승리 정신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항미원조 전쟁은) 제국주의 침략 확대를 억제하고 중국의 안전을 수호한 것"이라며 "전 세계에 중국인이 세계 평화를 수호하는 단호한 결심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鉴往知来.시진핑이 이날 제시한 담화에서 '과거를 보고 미래를 알자'며 위대한 항미원조정신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鉴往知来.시진핑이 이날 제시한 담화에서 '과거를 보고 미래를 알자'며 위대한 항미원조정신을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을 제국주의의 침략이라고 규정하는 시 주석의 인식은 '역사 왜곡'이다. 북한이 뜬금없이 제국주의의 선봉이라는 말인가?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에 뛰어든 중국의 개입은 엄연한 '군사적 침략'이다. 반미(反美) 정서를 앞세워 '항미원조'라고 규정했지만 틀렸다. 우리나라를 지원한 것은 '유엔군'이다. 차라리 '항련원조'(抗聯援朝·유엔에 대항하고 북조선을 지원하는) 전쟁이라고 불러라.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 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참전했던 인민지원군 노병.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 전쟁 70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참전했던 인민지원군 노병.

중국이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한반도는 통일된 나라로 재탄생했을 것이다. 중국은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들어서는 것을 무력으로 막았다. 6·25전쟁의 2막에서 우리 국군은 궤멸한 북한군이 아니라 주로 중공군과 전투를 벌였다. 적군은 중공군이었다. 중국의 노림수는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것이었다. 시 주석은 한술 더 떴다. 19일 베이징 군사박물관에서 열린 항미원조 전쟁 7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평화를 수호하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역사적 결정을 단호하게 내렸다"며 "세계 평화와 인류의 진보에 큰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다.

북한 김정은은 다음 날 평안남도 회창군의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능'을 찾아 헌화하고 중국의 지원에 감사 인사를 보냈다. "조·중(북·중) 두 나라 군대와 인민이 운명을 하나로 연결시키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피로써 쟁취한 위대한 승리는 세월이 흐르고 세기가 바뀐 오늘에 와서도 변함없이 실로 거대한 의의를 가진다." 서로 맞장구를 친다. 시 주석도 쓰촨성에 있는 '인민해방군상이군인휴양소'를 찾아 6·25전쟁 참전 부상자들을 위문했다.

팔로군을 주축으로 한 중국인민지원군이 1950년 10월19일 항미원조전쟁 참전을 선언하고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총사령관은 펑더화이 팔로군을 주축으로 한 중국인민지원군이 1950년 10월19일 항미원조전쟁 참전을 선언하고 압록강을 건너고 있다. 총사령관은 펑더화이

일주일 사이 세 차례나 항미원조 전쟁 행보다. 신화사와 인민일보 등 중국의 관영 매체는 항미원조 정신을 설명하는 관영 기사로 도배됐다. 시 주석의 왜곡된 역사 인식은 2017년 방미 때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하는 자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트럼프는 시 주석이 '중국은 한국과 수천 년 동안 많은 전쟁을 벌였고, 실제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실 시 주석의 이 같은 인식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세계테마기행'을 촬영하면서 중국 오지마을을 다닐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대개 반겨주지만, 북한과 구분하지 못하고 같은 나라로 인식하거나 미국의 식민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꽤 있었다. "한국, 북조선과 같은 나라 아닌가? 언제 독립했어? 미국의 위성국(식민지)으로 알고 있었는데…"와 같은 반응이다.

우리는 중국의 역사 왜곡 행태에 대해 웬일인지 스스로 눈을 감는 일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에 가서 중국은 '대국' 우리는 '소국'이라며 자세를 낮췄다.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하지 않았던가. 국가 지도자의 그릇된 처신은 '국격'을 낮춘다. 2017년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의 허름한 서민식당에서 이틀씩이나 '혼밥'을 먹은 홀대는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시 주석이 주도한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참석한 장면에서도 아쉬운 대목이 있다. 그날 입은 박 전 대통령의 황금색 재킷은 의전상 문제가 많다. '전승절' 같은 중국의 엄중한 행사에서 외빈이 피해야 할 복색(服色)이었다. 중국이 북한과 항미원조 전쟁을 함께 치른 혈맹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순간, 중국의 본심은 우리의 우방이 아니라 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이라는 어설픈 논리로 미·중 사이의 줄타기 외교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준 셈이다.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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