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매일 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논픽션 부문 '실버 취준생 분투기' - 이순자

입력 2021-07-21 06:30:00 수정 2021-07-20 18:58:05

이순자
이순자

이글은 내가 62세에서 65세까지 겪은 취업 분투기다.

퇴근 시간이 가까운 취업창구는 한산했다. 담당자에게 이력서를 내밀자 이력서를 훑던 담당자 입꼬리에 묘한 비틀림이 스쳤다.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만면에 미소 짓고 대응하지만 내 눈엔 보인다. 이런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무언의 압박.

"이력서에 있는 자격증 중 가능한 직종이면 좋고요."

"재능이 많군요. 자격증도 많고 그런데……"

자격증 시대지만 자격증의 우선 조건은 나이다.

"나이가 너무 많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거나요."

환갑을 넘은 취업지망생에게 자격증은 장식품일 뿐이라는 걸 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직원이 뜸 들이는 동안 재빨리 내가 할 수 있는 업종의 경력을 나열한다.

"사실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전공이 문창과라 도서관에서 독서 지도나 글쓰기 수업도 가능하고요. 옛날에 어린이집을 몇 년 해서 아이 돌봄이나 방과 후 도우미도 할 수 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활동 이십 년 이상해서 환자 돌보는 것도 가능하고 미술 문학 음악 상담 치료 쪽으로 1급 자격증 다 있어서 상담 치료도 가능합니다. 솔직히."

솔직히. 라고 말해놓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화려한 자격증을 열거해놓고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 뭐하고 노후준비를 하지 못했냐고 문책당할 것만 같다. 그동안 뭘 했을까? 먹고사는 걱정 없어 병원으로 복지관으로 봉사만 하고 다닌 게 잘못일까? 혼자가 되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내 탓이다. 평균수명이 점점 길어진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요 몇 년 나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자격증이 책장 한 면을 도배할 만큼 준비했다. 어쩌면 현실을 직면하기 겁나 자격증에 몰두했는지도 모르겠다. 직원도 당황스러웠던지 험한 일 하실 분 같지 않으시네, 곱게 나이 드셨네. 라며 위로랍시고 몇 마디 거든다. 직원이 이력서를 들고 이렇게 많은 능력이 사장된다는 게 안타깝다고 애석한 표정을 짓는다. 연기 굿이다. 나도 안다. 너도나도 구직활동에 나선 초로의 구직자들의 아직은 대접받고 싶은 알량한 자존심이라는 걸. 그걸 적당히 다루는 방법도 그녀는 정확히 알고 있다. 잔뜩 근심 어린 표정으로 혹시 청소나 단순 작업 같은 일도 하실 수 있겠냐고 공손하게 묻는다. 재빨리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재고 따지고 할 여유도 없다. 이력서 용지를 주며 이력이나 경력이 화려하면 채용이 어려우니 다시 작성하라는 시청직원의 말에 얼른 순응한다. 어디까지 잘라야 하지? 두 장 빼꼭한 이력서를 내려다보다 이력서를 구겨버렸다. 롤러고스터다. 중졸 한 줄로 마감한 이력서를 받아 든 직원이 만족한 미소를 짓는다. 구인회사를 훑다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어주며 회사 위치를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

(1)

물어물어 찾아간 P산업은 아현동 재래시장을 지나 몇 개의 골목을 돌아 막다른 골목 구석진 곳에 창고를 임대한 가건물이었다. 타이탄 트럭만 한 드럼 세탁기 네 대의 우렁찬 소리가 골목 어귀까지 들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수건 뭉치들 사이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검은 손이 재빨리 접히고 있었다. 사장은 가져간 이력서는 보지도 않고 나이부터 물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으세요?"

"아 네, 지금 당장이라도……"

"그럼 내일 아침 9시 출근하세요."

골목을 몇 개 돌아 굴레방다리를 지나자 바로 찻길이 나왔다. 갈 때는 멋모르고 물어물어 갔는데 나오다 보니 젊은 시절 직장동료가 살던 동네여서 길이 낯익었다.

첫 출근이라고 일찍 서둘렀는데도 아가씨들 앞에는 벌써 정리된 수건이 산더미같이 쌓였다. 도대체 몇 시에 출근한 건가? 외국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의 현주소다. 괜히 특별대접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언짢았다. 수건 더미를 밀고 앉았다. 사장은 개어놓은 수건을 묶느라 정신이 없다. 바닥에 앉아 무한정 쏟아내는 수건을 접는 단순노동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30분도 지나지 않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어깨가 아프다. 얼마 전 연골이 찢어진 무릎이 아파 수건 두 장을 말아 무릎에 고였다. 사장이 지나다 보고 웃는다. 이국의 아가씨들은 손을 재게 놀리며 저들끼리 뭐라 솰라대고, 나는 죽어라 속력을 내는데도 따라잡지 못한다. 종종 아가씨들이 나를 쳐다보며 웃는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할 시간도 없이 바로 작업 시작이다.

저녁 6시가 되자

"일은 할 만하세요? 내일도 9시까지 오세요."

사장은 대답할 새도 없이 휙 가버렸다. 외국 노동자들은 퇴근할 기미가 없다. 나는 수건 더미 속에 처박힌 신발을 꺼내 들고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에 삐진다.

"얼른 퇴근 하세요?"

"다들 퇴근 안하는데?"

맹하게 묻자, 외국 노동자들은 야근이라며 그냥 가라고 한다. 외국 노동자들은 어려 보였다. 잘해야 스물 남짓 되어 보인다. 오지랖 넓은 나는 타국에서 고생하는 어린 그들을 생각하며 밤새 잠을 설쳤다.

사흘째 되던 날, 등과 목 근육에 경련이 일어났다. 자주 일어나 목운동과 허리 들리기 운동을 했다. 사장이 물끄러미 쳐다보다 '빨리하세요.' 한마디 툭 던진다. 외출했던 사장은 퇴근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옆의 아가씨가 손으로 천천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말은 안 통했지만, 엄마뻘도 더 되는 내가 애쓰는 게 안쓰러운 모양이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뭔가 표현을 하고 싶어도 영어도 아닌 그들의 언어로 소통은 불가능했다. 아가씨들은 일하면서도 옆 사람과 무언가 계속 재미있게 대화를 나눈다. 타국에서 외로울텐데 다행이다. 일에만 열중해도 나는 그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퇴근 시간이 지나자 아가씨들이 퇴근하라고 손짓한다. 딱해 보였던 모양이다. 사장이 없어 망설이다 아가씨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섰다.

추적추적 가랑비가 내린다. 굴레방다리 안에서 할머니가 호박잎을 팔고 있다. 노점상 할머니에게서 호박잎을 산다. 밥해 먹을 힘도 없는데 그저 할머니가 우중에 장사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다. 매사 이 모양이다. 이런 성격, 이것도 성격장애의 일종 아닐까? 지금 누가 누구를 배려 하나 싶다. 저녁도 하지 못한 채 나는 밤새 앓았다. 파스를 온몸에 덕지덕지 붙이고도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프다. 첫 취업은 닷새 만에 끝났다.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나는 사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죄송합니다. 힘에 부쳐서 못하겠습니다. 그동안 일한 임금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xx은행 계좌번호 xxx-xxxx-xxxx-xxx 아무개'

나는 딱 하루, 한 시간에 몇 번씩 핸드폰을 확인하고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포기했다. 사장한테서는 영영 아무런 답도 오지 않았다. 일주일 이상 일하지 않으면 임금 지급 의무가 없다. 근로기준법을 잘 준수하는 사장을 원망하는 짓은 부질없는 짓이다. 파스와 버스비만 날렸다. 나 말고 다 외국인 근로자인데 나를 채용한 이유가 무얼까?

학력과 경력을 없애고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들을 버리니 취업은 쉬웠다. 역시 일자리센터 직원의 충고는 적중해서 한방에 백화점 청소부 자리를 얻었다. 나는 주문을 외웠다.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해야 한다. 나의 다짐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2)

첫날 지하 식품부.

아침 조회시간. 고객에 대한 친절 교육과 인사복창을 한 다음, 그날 일터와 청소에 필요한 용품을 배당받아 둘씩 짝을 지어준다. 짝꿍은 나보다 5살 아래였지만 손자가 초등학교 3학년이란다. 오랜 경력을 쌓은 그녀의 일머리는 경이로웠다. 자그마하니 땅땅한 몸매를 어찌나 재게 놀리는지 미처 따라잡지 못해 대걸레를 질질 끄는 나에게 대걸레를 질질 끌면 cc tv에 찍힌다고 질겁했다. 걸레는 항상 앞으로, 알았지요? 그녀는 '항상 앞으로'를 대 여섯 번이나 복창하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cctv에 찍힐까 봐 엔간히 겁이 나는 모양이다. '한 손은 대걸레 위를 꼭 잡고, 다른 한 손은 중간지점을 잡아 돌려가며 마포 질을 해야 깔끔하게 된다고요.' 설명은 쉬워도 막상 하려면 어려웠다. 신입 교육 잘못시키면 자기가 문책당하니 잘하라며 어깨를 들썩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짝꿍 아줌마 수다가 시작됐다. 쉴 새 없이 지껄이는 와중에 무심한 척 내 신상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요 몇 년 혼자 조용히 살던 버릇이 들어있던 나는 죽을 맛이다. 육체를 놀리는 일보다 이야기를 듣는 일이 더 힘들었다. 최선을 다해 고개를 끄덕여 장단을 맞추는 일, 감탄사를 섞는 일, 적당한 질문을 준비하는 일이 시를 쓸 때보다 더 골똘하게 한다. 그래도 열심히 분위기를 맞춘다. 결혼하고 삼십 오 년간 매일 하던 청소가 손에 익지 않아 짝꿍 아줌마 잔소리를 자주 듣다 보니 정신이 혼미했다. 짝꿍 아줌마는 내 실수를 즐기는 것 같다. 청소전문가의 긍지려나. 변기 뚜껑에 입이 닿도록 코를 박고 변기 몸통을 닦고, 뚜껑을 닦고, 변기 속을 닦으면서 이 일로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자고 중얼거린다.

때로는 중얼거림이 약이 되기도 한다.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혼자 묻고 답하면서 청소 아줌마들의 신입이 되었다. 점심시간에 청소 아줌마들이 모였다. 계단 밑 공간에 라면상자를 깔고 둘러앉아 왁자지껄 수다가 시작되었다. 신입은 김밥과 사과로 내일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고 짝꿍이 귀뜸한다.

둘째 날, 1층

신입의 첫째 임무, 되도록 빨리 전 층을 돌며 백화점 구조를 익혀야 한다. 1층 엘리베이터가 가동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엘리베이터 문과 주변 벽을 닦는다. 엘리베이터 앞 휴지통도 손자국 하나 없이 닦고 액자나 팻말도 먼지 한 톨 없이 닦는다. 엘리베이터가 가동되자 안쪽 문과 벽, 엘리베이터 짬 새를 손닿는 곳까지 닦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전에 순식간에 해치워야 하는 게 포인트다. 특히 층 표시는 지문이 많이 묻으므로 신경 써서 닦아야 한다고 짝꿍이 일러준다. 넓은 홀 마포 질은 청소 아저씨들이 청소차를 몰고 다닌다. 청소차가 신기해 돌아다보다 넘어질 뻔했다.

밖으로 난 대형유리창과 쇠창살은 양손을 동시에 휘둘러 닦는다. 어설픈 나는 자꾸 한쪽 걸레를 떨어트린다. 유리를 닦은 걸레로 홀 중간에 있는 소파를 닦다가 짝꿍에게 혼이 났다. 딴엔 시간을 절약한답시고 그랬는데 유리 닦던 걸레로 소파를 닦으면 유리에 먼지 앉는다고 성질을 부렸다. 백번 맞는 말이다. 청소도 요령이 있다. 백화점 청소는 집 청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청결을 요구했다. 고객들이 잠시 앉아 쉬는 소파를 걸레로 닦고, 건물 주변에 떨어진 것이 없나 확인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점심시간이 되자 김밥과 음료수와 사과를 사 들고 가 아줌마들이 있는 계단 밑 공간에 라면상자를 펼쳐 자리를 만들었다. 수다 삼매경이 한창일 때, 반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식품부 채소류 냉장고 밑에 물이 떨어졌으니 어서 가보라는 불호령. 총 근무시간은 열 시간, 점심 시간과 쉬는 시간 합쳐 두 시간의 휴식시간이 있지만, 쉬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고로 눈치껏, 요령껏 몸을 쉬어야 한다. 매장을 한 바퀴 돌면서 마포 질을 하고 나면 숨이 차고 숨 쉴 때마다 명치와 가슴이 쪼개지듯 아프다. 지병인 심장병 탓이다.

요령껏 움직여야 하지만 요령이란 일이 몸에 익숙해져야만 가능하다. 더구나 나는 고관절과 퇴행성 관절염 골다공증을 합친 부실한 몸이다. 처음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요령을 피울 줄 모르는 나는 몸만 힘들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뜰히 살림만 하던 나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 겪는 노동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집안일치곤 다른 집보다 4대가 사는 대가족이어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했는데도 말이다.

셋째 날, 2층.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다.

"그렇게 약해 빠져서 이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그러게요."

여기저기 파스를 붙인 나를 보고 짝꿍은 못마땅한지 쫓아다니며 투덜거린다. 내가 부족한 만큼 자신의 일이 늘어나니 왜 안 그렇겠나 싶다. 그렇기는 해도 나보다 어린 그녀에게 종일 핀잔을 듣다 보니 은근히 화가 치밀기도 했다. 화를 낼 일이 아니라 미안해할 일인 줄 알면서도 화가 났다. 힘에 부치니 입이 마르고 갈증에 시달렸다. 이번엔 오래 다녀야 한다고 최면을 걸어보지만. 점점 다리에 힘이 빠졌다. 점심시간이 끝나고부터 현저히 체력이 떨어진다 했더니 세 시 반쯤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잘 버티나 싶었는데 설마 오늘이 또 마지막 출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퇴근 시간에 반장이 내일은 쉬라고 한다. 그녀는 오랜 경험으로 신입은 사흘쯤엔 몸살이 난다는 걸 아는 모양이다. 하루 푹 쉬고 영양 섭취하고 모레 보자는 반장 손을 덥석 잡고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정말 고마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누구나 3, 4일에 한 번씩 쉰다고 했다. 나만 견디기 힘든 건 아닌 것 같아 위로가 됐다. 퇴근길에 소고기를 사 구워 먹었다. 몸이 견디려면 컨디션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반장 말이 아니라도 견뎌내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넷째 날, 지하 슈퍼

하루 쉬고 났는데도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반장이 처음이라 몸이 적응하기 힘들 거라면서 지하 식품부로 구역을 정해줬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뜻으로 느껴져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맥이 풀렸다. 식품부는 다른 매장보다 마포 질을 자주 해야 해서 체력이 달렸다. 한 시간 일하고 배가 고파 두유 두 개를 사서 짝꿍과 화장실로 들어가 얼른 마시고 나왔다. cctv에 찍힐까 노심초사했다. 마포 질이 익숙하지 않기도 하지만 워낙에 힘을 쓰지 못하는 나는 걸레에 끌려다니다 딱 걸렸다. 걸레에 끌려다니면 자국이 다 나는데 청소를 하는 건지 더럽히는 건지 모르겠다며 반장이 호통을 쳤다. 손발이 벌벌 떨리도록 해도 내겐 힘에 겨웠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 몸이 따라주지를 않아서"

"그렇게나 힘이 없는데 이런 일을 한다고 나섰어요?"

"그러게요."

반장도 어이가 없는지 등을 툭툭 두드리고 일단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십 분에 열 번도 더 시계를 쳐다보며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락커룸에 가자 반장이 다가왔다.

"어때요? 계속 할 수 있겠어요?"

"……"

"그동안 애쓰셨어요. 일이 힘들어서 하시기 힘들 거에요. 원래 하시던 분들도 그 나이엔 그만두세요. 괜히 병원 신세 지지 말고 쉬세요. 그동안 수고하셨어요. 일주일 후 통장 확인하시고, 사무실 가서 퇴직순서 밟으시고, 근무 기간 짧아 퇴직금 없는 거 아시죠?"

"……"

반장의 말은 다 옳다. 내 입으로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다. 통장엔 정확히 사흘 뒤,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왔다. 휴무 날 임금까지 쳐서 들어온 금액을 한참 쳐다보다 세탁공장 사장이 떠올라 입맛이 썼다.

(3)

낯익은 전화번호가 떴다.

"건물청소 하실 수 있겠어요? 신규 입점하는데 매장 청소는 아니고 화장실과 사무실만 하면 되니까 백화점보다 쉬울 거여요."

벌써 백화점 그만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일자리센터였다. 요즘은 일자리 구해 주는 것도 실적인가보다. 그동안 육체노동으로 얼굴이 반쪽 된 나는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네 이력서랑 주민등록등본 사진 두 장 가져가면 되지요."

얼마 전 G마트가 망했다는 소문과 함께 L마트가 들어선다는 소문이 사실인가보다.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이라 차비는 안 들겠다 싶어 기뻤다. 맥도날드를 통한 임시로 드나드는 문으로 들어서자 건물 안은 분진으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 다시 4층으로 내려오니 임시 사무실이 보였다. 건물 안에 들어선 지 채 5분도 되지 않아 가슴이 조이고 아팠다. 남자 직원이 청소도구는 창고에서 알아서 갖다 쓰고 구역은 사무실 1층 현장직원용 남자 화장실과 화장실 옆 비상계단 1층부터 8층까지, 그리고 지하 2층부터 B 7층까지 주차장이란다.

"저 혼자 그걸 다 해요?"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다.

"할 거 없어요. 슬슬 쓰레기 보이면 줍고 화장실 물기 없게 닦고 계단 마포질 하시면 돼요."

남자 화장실 드나들며 화장지 채우고, 휴지통 비우고, 짬 짬이 8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마포 질을 하는 일은 백화점일 보다 몇 배 힘들었다. 공사로 인한 분진으로 청소는 하나 마나였다. 싸 온 주먹밥을 사무실 귀퉁이에서 먼지와 함께 먹으며 눈물이 났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공사 중인 지하 주차장은 어둡고 더러웠다. 나무토막, 시멘트 덩어리. 광고지, 껌, 과자 부스러기, 가래침까지. 혀를 빼 입술을 축이면 먼지가 씹혔다. 물 마실 곳조차 없었다. 1층 맥도날드 매장을 기웃거리다 GS편의점에서 물을 샀다. 문 앞에서 한 병을 단숨에 다 마셨다. 지하 5층부터는 캄캄했다. 시멘트 작업만 끝낸 캄캄하고 넓은 공간은 으스스했다. 왠지 무서워 가끔 뒤를 돌아다보며 온갖 잡동사니 쓰레기를 주워 담았다. 공사 중이라 엘리베이터도 운행하지 않았다.

지하 7층에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4층 사무실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직원에게 못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용역회사에 전화를 걸어 세 사람이 해도 못 할 일을 어떻게 한 사람에게 시킬 수 있냐고 항의하자 대충하지 그랬냐며 오히려 면박이다.

좀 쉬어야지 하는데 문자가 왔다. 일자리센터다. 이제 스토커 수준이다.

"병원 청소 해 보실래요?"

문자를 무시했다. 어째 기분이 묘하다. 일자리센터 직원이 자신의 실적을 올리기 위해 뺑뺑이 돌리는 느낌이다. 뉴스에 나오는 취업률이 진짜일지 의심스럽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을 한 달에 몇 군데씩 돌리면 취업률은 가파르게 오를 것이다. 세탁공장 사장이 떠올랐다. 며칠씩 일하고 그만두는 노인취업자를 쓰면 노 임금으로 일 시키고 절세도 되고 꿩 먹고 알 먹기 아닐까. 능력치대로 취업을 시켜야지 이렇게 무작위로 취업을 시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탁상공론이거나 짜고 치는 고스톱,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이제 청소라면 신물이 났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데 '어린이집 주방 선생님 구함' 광고가 보였다. 쉬어야지 했던 마음을 접고 전화를 걸고, 이력서를 챙기고, 사진을 챙기면서 이게 몇 번째지? 이번만은 좀 오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주방 일에 '선생님은 무슨'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어린이집은 우리 집 길 건너 아파트 1층이었다.

(4)

원장은 나이가 좀 많으시지만 깔끔하실 것 같다며 한 달에 삼십 만원인데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맙소사 한 달에 삼십이라니 아무리 세 시간 일이라 하더라도 주말까지 치면 시급 사천 원도 안된다. 주방 담당을 채용하는 일은 어린이집 개원 시 필수 항목이어서 할 수 없이 쓴다며 자기가 해도 충분하단다. 잠시 고민하다 노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며 나를 설득 시켰다. 어린이집은 오전 10시에 출근해 바로 아기들 간식 차려주고 간식 접시 설거지 후 점심준비에 들어간다. 11시 반, 밥 안칠 시간 전에 반찬 네 가지를 찌고 볶고 끓이고 정신이 없다. 손이 기계처럼 움직여도 시간이 부족했다. 사흘은 좀 힘들었지만, 평소 하던 부엌일이라 그런지 금방 적응됐다.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말끝에 문창과 출신인 걸 알게 된 원장은 시간 되실 때 아기들 이야기 할머니 수업 좀 하시면 좋겠다고 한다. 봉사로 하시면 보람 있지 않겠냐는 말에 어이없어 원장을 빤히 쳐다봤다. 저임금에 공짜로 아이들 수업까지 시키려 든다. 이럴 땐 그냥 무시가 답이다.

아이들 식단은 매주 주말 계획표와 나간다. 인쇄물을 보고 웃음이 났다. 골고루 영양밥에 반찬도 다채로웠다. 실상은 원장이 퇴근하며 들른 마트에서 그날, 그날 떨이로 재료를 산다. 식단 안내장 맨 밑에 메뉴는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별표까지 쳐서 집어넣은 문구가 함정이다. 보혐 계약서가 생각났다. 원장이랑 선생님들이 내가 해 주는 반찬이 맛있다고 하니 어쨌든 열심히 했다. 이제 나한테 딱 맞는 일을 찾았는데 문제는 보수가 최소 생활비가 안 된다는 것. 놀면 어쩌겠는가.

아기들을 보니 힐링이 되었다. 내 손주들 먹이던 생각이 나 일이 즐거웠다. 금요일 아기들 소방서 현장학습 가는 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이들이 먹을 걸 생각하며 초밥을 일일이 하트 모양으로 쌌다. 원장은 같이 가자 했지만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아쉬워했다. 가면 아이들 밥 먹이는 뒷바라지는 물론 아이들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급료는 코딱지만큼 주면서 이 핑계 저 핑계 부려먹으려는 원장의 속셈이 얄미웠다.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 만드느라 잠도 못 잤는데 굳이 현장학습까지 따라가 수발들 일은 없겠다. 나도 이제 세상인심에 조금씩 눈이 뜨이는 모양이다. 어쩐지 그게 또 서러웠다. 내가 나를 잃어가는 것 같아서.

일주일이 지나고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냉장고에 씻어놓은 지 오래되어 누런 쌀을 꺼내 밥을 하라는 원장과 의견이 부딪혔다. 손가락으로 쌀을 비비니 식혜 밥처럼 끈적거리면서 뭉개진다. 이 쌀은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 쌀이다. 몇 번을 씻어도 이상한 냄새가 나서 밥을 할 수 없다고 하자, 원장은 괜찮다고 자꾸 그 쌀로 밥을 하라고 요구했다. 괜찮다고 우기는 원장을 이길 수 없어 밥을 안쳐놓고 심란했다. 커피색 밥이 되었다.

원장은 그 밥을 14개월 된 자기 아이에게 보란 듯이 먹였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먹이라는 무언의 시위다. 선생님들이 불안하게 원장을 쳐다보다 식판을 들고 각자 담임 방으로 들어갔다. 8개월 영아부터 4살까지 아기들이다. 고등어는 신선도가 떨어져 산산이 부서지고 채소는 물렀다. 여기까지 인가보다. 굶어 죽어도 이렇게 아기들에게 부당한 일은 할 수 없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주방을 맡은 내 책임이기도 하다. 저 어린 아기들에게 이런 걸 먹이다니. 부모들이 알면 당장 잡혀갈 일이다. 집으로 오는 신호등 앞에서 문자를 보냈다.

'일 그만두겠습니다. 다른 사람 구하세요.'

원장은 이미 눈치챘는지 다른 말 없이 통장번호를 보내 달라고 했다. 교육청에 신고할까 말까 고민하다 그만둔다. 동네라 자주 볼 수밖에 없는데 껄끄러운 일이다. 마음이 불편했다.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이라도 직언을 했으면 좋겠는데 아마도 선생님들도 직장을 계속 다니자니 쉽게 신고할 맘을 먹지 못하는 것 같다.

(5)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을 켰다. '아기 돌봄'을 입력하니 돌봄 무료 사이트가 나왔다. 신상정보와 함께 예전에 집에서 놀이방 했던 사진과 이야기를 올렸다. 일주일 후 11개월 된 여아와 집안일을 좀 해 줄 수 있냐는 전화가 왔다. 입주를 제시하며 보수는 원하는 대로 주겠다고 했다. 나는 예민해서 남의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한다고 했더니 아기 엄마가 저녁 시간에 면담을 요청했다. 예전에 어린이집운영 할 때 찍은 사진과 손주들 간식 조리 과정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더니 나한테 신뢰감을 가지는 눈치다. 안방에서 할머니가 나오셨다. 할머니 계시다는 말은 못 들어서 난감했다. 할머니를 도와줄 일은 없고 점심과 저녁만 드리면 된단다. 집에 어른이 계시면 여러 가지 할 일도 많지만, 어르신과 신경전을 벌여야 한다. 반갑지 않은 환경이다.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를 하게 됐다. 나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다.

아기는 처음 보는 나를 보고도 낯을 가리지 않았다. 까다롭지 않은 아기여서 마음이 놓였다. 아기는 잘 따랐지만, 50펑이 넘는 집이라 첫날부터 청소와 집안일로 진을 뺐다. 이유식과 동화책을 읽어 주라는 아기 엄마의 요구는 들어줄 시간이 없다. 할머니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세끼 밥만 드셨다. 밥이나 반찬도 요구사항이 많았다. 할머니는 아기를 전혀 돌보지 않아 화장실 갈 때도 아기를 안고 가야 했다. 일하는 짬짬이 아기를 쳐다보며 마음이 아팠다. 하루 일해 본 나는 집안일과 아기 돌보는 일을 병행할 경우, 아기를 책임 있게 돌볼 자신이 없다. 아기 돌봄 비에서 청소 도우미 비용을 내가 지출하겠으니 청소 도우미를 쓰자고 제안했다. 아기 엄마는 집에 다른 사람 들이는 일이 신경 쓰이는지 난색을 지었다.

결국, 아기 엄마는 아기가 처음 보는 나를 잘 따르자 아기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것 같다며 청소는 자기네가 알아서 할 테니 아기만 잘 봐 달라고 사정했다. 이튿날부터 청소는 할머니가 하고 나는 아기에게만 집중하기로 했다. 세끼 각기 다른 이유식을 정성껏 끓여 먹이니(지난번 이모님은 한꺼번에 많이 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일주일씩 먹였다고 한다) 금방 조리한 이유식이라선지 아이가 입맛을 다시며 잘 받아먹었다. 할머니는 아기가 이렇게 잘 먹는 거 처음 봤다고 좋아하셨다.

청소를 안 해도 할머니 점심과 저녁 준비, 세끼 이유식 준비, 빨래, 아기 목욕 등 바빴다. 가족들은 아기가 잘 먹으니 모두 좋아했다. 나도 아기가 잘 먹고 잘 노니 기뻤다. 나와 아기의 노는 소리가 거실 안을 가득 채웠다. 아기들은 몸으로 놀아줘야 좋아한다. 할머니는 청소하면서 아기와 뒹구는 내가 못마땅한지 툴툴거렸지만 못 들은 척 넘겼다. 아기는 할머니에게 잘 가지 않는다. 그동안 할머니와의 관계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할머니는 손녀딸을 예뻐하기는 하지만 한 번도 안거나 업어주는 걸 본 적이 없다. 몸을 유난히 챙기셔서 각종 건강식품과 영양제가 싱크대 한 칸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저녁때가 되자 아기가 칭얼댔다. 할머니는 전기를 아낀다고 거실 불을 껐다. 거실 등을 모두 켜자 다시 잘 논다. 아기가 있는 집은 밝아야 한다. 시력에도 문제가 생기지만 성격에도 문제가 생긴다. 어른도 어두컴컴한 집에 있으면 우울증 걸린다. 아기들은 밝은 데서 밝게 키워야 밝은 성격으로 자란다. 냉장고를 다섯 대씩 켜면서 거실 불을 켜지 못하게 하는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 냉장고엔 각종 곡식과 마른 건어물이 넘쳐났다. 집에서 밥 먹는 사람은 할머니와 아기뿐인데 냉장고 다섯대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기가 전날 잠을 못 자 아침부터 칭얼거렸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11시 반부터 낮잠을 잤다. 세 시간을 자고 일어난 아기는 기분이 좋았다. 준비해둔 밤 이유식을 쩝쩝거리며 맛있게 먹었다. 할머니가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 목욕부터 시키자고 했다. 목욕을 끝내고 나오자 이유식 먹인 그릇 치우지 않았다고 할머니가 노발대발이다.

"아기 잘 때 뭐하고 주방이 이게 뭐요?"

이유식 먹인 아기 그릇과 수저 하나가 물에 담겨 있었다.

"아기 잘 때 다 치웠었는데 자고 나 먹인 그릇이에요. 금방 치울게요."

"저번 이모는 아기 잘 때 같이 자도 일 다 해 놓고 아기 일어나면 같이 뒹굴고 놀았는데 일을 도대체 하는 건가 마는 건가."

할머니는 청소 때문에 심기가 불편함을 이런 식으로 푸는 것 같았다.

"아기 잘 때 늘어 논 게 아니고 아기 일어나서 이유식 먹인 거라고요."

"뭘 잘했다고 말대꾸는, 어른이 말하면 네 다음엔 그렇게 하겠습니다, 할 것이지."

"그게 아니고 상황을 설명하는 거지요."

"상황? 이 상황을 보고 그런 말이 나와?"

"이유식 먹자마자 할머니께서 목욕시키자고 하셨잖아요."

"아기 잘 때는 뭐 했냐고?"

할머니의 이야기는 거기서 맴돌고 있었다.

"할머니 제가 할머니와 지내는 게 힘들 것 같네요."

"뭐야 그만두겠다는 거야?"

"할머니 마음에 들게 할 수 없으니 저도 답답합니다."

"우리 집은 할 일 없어, 뭐 할 일 있어? 저번 이모는 맨 날 애기끼고 잠만 자더만."

그러니 아기가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았냐고 하려다 말았다. 무슨 말이 먹히겠는가.

"저는 할머니하고 잘 지내고 싶은데 제가 능력 부족이라 아무래도 빨리 그만두는 게 좋겠어요. 아기도 사람 자꾸 바뀌면 좋을 거 없고요. 저랑 정들기 전에 그만두는 게 좋겠네요."

할머니와 잘 지내지 못하리라던 내 우려는 정확하게 맞았다. 옛날 마음대로 식모 부리던 버릇이 몸에 배어있는 할머니와 나는 어차피 평행선일 뿐이다.

"이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듣네. 박카스 파는 것보단 이게 훨씬 떳떳하지"

"네? 박카스를 팔다니요."

"공원에 가면 얼굴 반반한 좀 젊은 5, 60대 할마시들이 할아버지에게 박카스 팔잖아."

"그게 무슨?"

"이런 눈치 없기는 자네처럼 얼굴 반반한 할마시들이 박카스 사세요, 하면 할아버지들이 오천원, 만원으로 몸도 산다잖아. 그것보다는 우리 집에서 일하는 게 백번 낫지 않겠어?"

"?……"

할머니는 딸에게 지청구 들을 생각에 아무 말이나 던졌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아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기 엄마가 달려오고 상황을 다 들은 아기 엄마가 당황하며 사과를 했다. 할머니가 같이 계시는 한, 똑같은 일은 계속 벌어질 것이다. 휘청거리며 아이 집을 나섰다. 할머니가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입술에 잇자국과 함께 피가 베어 나왔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머리가 쇠망치를 얹어 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슈퍼에 들러 대용량 맥주 두 개를 샀다. 두통약을 꺼내 먹다 이쯤에서 생을 마감한들 아까운 생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파트는 정서향이어서 저녁놀이 지는 풍경이 일품이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하늘을 물들인 노을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와인 잔과 맥주병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풍경이 죽인다. 이 풍경 속에 죽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와인 잔을 치켜들자 맥주가 노을에 붉게 물들었다. 맥주에서 와인 맛이 날 것 같다. 베란다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기 시작한 건 오후 여섯 시 경이다.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자 자꾸 웃음이 나왔다. 무엇을 위해 그리 열심히 살았던가. 밤새 싸우고도, 죽게 아플 때도, 남편의 바람으로 일주일 굶으면서도 식구들 밥은 악착같이 차렸다. 밥을 하는 일을 나는 생명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었을까? 35년 밥순이 마지막은 허망했다. 노을이 맥주잔 안에서 찰랑거렸다. 맥주를 마시며 부질없는 내 생에 자꾸 헛웃음이 났다. 미친 걸까? 미쳐가는 걸까? 이래도 저래도 좋다. 나를 여기서 끝낼 수 있어서 황홀하다. 약통에서 약을 꺼내 술 한 모금에 약 몇 알씩 털어 넣기 시작했다. 대용량 맥주 두 병에 소염제, 진통제, 두통약 안주는 술술 넘어갔다. 무엇이든 많이 먹으면 잠들지 않을까? 약이던, 술이던. 자 복잡한 인생이여 안녕! 약통 한구석에 있던 시신 기증서와 장기기증 증서를 식탁에 꺼내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먼지로도 남고 싶지 않다.'는 한 문장과 함께 잠이 들었다.

그날, 구차한 생 버리고 결단코 죽어버리겠다고 실행했던 그 일은 낌새를 알아챈 동창이 후배를 시켜 방해했다. 119와 경찰차가 오고 평소에 문을 잠그지 않고 살던 내가 겹겹이 문을 잠그고 실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불발로 끝났다. 베란다 창문을 잠그는 걸 깜빡해서다. 걸쇠를 채운 현관을 열 수 없자 119소방대원이 윗집 베란다를 통해 자일을 타고 우리 집 베란다로 진입했다. 동창이 그 일을 알아챈 것은 내가 시그널을 보냈기 때문이란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부디 잘살라고 전화를 했단다. 난 기억에 없다. 이 동창은 시각장애인이어서 자기가 올 수 없으니 우리 동네 가까이 사는 친한 후배를 시켰다. 내가 많이 아픈 것 같으니 가보라고 했단다.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던 후배는 평소에 문을 잠그지 않던 현관문이 잠긴 걸 보고 느낌이 이상해 119를 불렀다. 잠긴 문을 열기 위해 경찰을 부르고 집에 들어온 후배가 나를 일으켜 앉히고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고 바짝 압박하자 술과 약들이 토해졌다. 이 후배는 간호사 출신이다. 몇 번의 토사로 정신이 들었다. 그렇게 자살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살면서 내 주변엔 사람이 참 많다. 먹이는 거 주는 거 좋아하고 얘기하기 좋아하는 내 성격 탓이다. 나는 어쩌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지려 했을까? 고생을 모르고 살아서? 라고 생각하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한 생각이 떠올라 억울했다. 각종 폭력을 세트로 휘두르는 남편은 사랑과 전쟁 드라마를 쓰라면 백 편도 쓸 수 있다. 아직은 보이고 싶지 않은 내 치부여서 내어놓지 못한다. 내 아이들이 받을 상처 때문이다. 억울해도 함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짐을 쌌다.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다. 언니가 비워둔 집에 임시로 살고 있었다. 나는 내게 베푼 언니에게 하마터면 큰 상처를 줄 뻔했다. 떠나는 게 옳다. 강화도로 가 무상거주자가 됐다. 강화도는 추웠다. 함께 사는 분들의 배려로 요양보호사 교육을 받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육을 받으며 일단 생활비가 필요했다. 결혼한 아들에게 마지막 비상금을 털어주고 한 달에 오십 만 원씩 갚으라고 했다. 그걸로 생활비를 쓰고 교육을 마쳤다. 시골은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아 그럭저럭 견뎠다.

교육을 끝내고 실습을 한 요양병원은 김포에서 가장 큰 요양병원이었다. 2주일은 요양병원에서 2주일은 주간 보호 센터에서 실습을 했다. 호스피스 봉사를 장기간 한 덕에 실습이 어렵지 않았다. 다른 실습생보다 앞장서 일하며 이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욕하는 날, 목욕실 앞에 어르신들 줄 세워놓고 목욕을 시키다 쓰러졌다. 뼈가 드러난 어르신들을 보면서 돌아가신 엄마의 뼈가 드러난 이마와 볼과 갈비뼈가 생각났다. 살이 없어 시퍼렇게 멍들었던 엉덩이도 생각났다. 그 모습에 내가 겹치면서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갑자기 목이 막히며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같이 교육받던 사람들은 그동안 열심히 앞장서서 일하던 내가 쓰러지자 어리둥절했다.

주간 보호 센터에는 거의 치매 어르신들이 오신다. 경증 치매 어르신이라 소통도 가능하고 오락도 가능하다. 낯을 잘 가리고 남 앞에 서지 못하던 나를 벗어버리고 어르신들 앞에 서서 노래도 하고 춤도 췄다. 포장된 나를 하나씩 벗어버리고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뛰어놀았다. 이전의 나를 기억하면 견뎌낼 수 없을 것이므로 이전에 할 수 없던 것들을 용감하게 하기로 작심했다. 그래 인생 이모작이다. 이제부터 예전의 나는 없다.

실습

주간 보호 센터에서 만난 두 할머니가 있다. 김 할머니는 말씀이 없는 조용한 분이고 노 할머니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노래와 춤으로 흥을 발산하는 할머니다.

김 할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 치매가 시작되어 아들 집으로 오셨다고 한다. 종일 말 한마디 없는 할머니께 나는 주로 몸으로 대화한다. 어깨를 안는다거나 두드리거나 주무르거나 두 손을 마주 잡고 일어서서 흔든다. 일부러 바짝 앉아 무릎과 무릎을 끼우고 장난질을 치기도 한다. 몸짓언어가 익어가자 가끔 할머니가 수줍게 웃었다. 체조도, 그림 그리기도, 노래도, 따라 하지 않는 할머니 옆에서 나는 몸으로 장난질을 친다. 할머니 옆에서 혼자 춤추고 혼자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혼자 노래를 부른지 사흘 만에 할머니가 먼저 내 팔을 톡톡 쳤다. 모른척하자 팔을 잡아 흔들더니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까 입에 넣어 준다. 간식시간에 준 사탕이다. 이제 됐다. 걸쇠가 풀렸으니 천천히 다가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다음날 할머니가 배탈이 났다고 오시지 않았다. 이틀 후 오신 할머니는 많이 초췌해지셨다. 눈으로 나부터 찾았다. 나를 보고 벌쭉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먼저 손잡아주고 먼저 등 두드려주고 먼저 무릎을 치며 장난을 걸었다. '보고 싶었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처음으로 스스로 그림도 그리고 노래는 따라부르지 않아도 손뼉도 치고 나와 손잡고 춤도 췄다. 점심시간에 밥에 생선을 발라 올려 나 보고 먹으라는 시늉을 했다. 먼저 드시라 하니 도리질 치며 '내해여, 내해여' 단호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나는 주간 보호 센타 cc가 됐다. 원장님과 면담으로 할머니 사정을 알게 됐다. 치매로 혼자 시골에 계시는 게 위혐해 아들 집에 오셨는데 냉담한 며느리와 지내며 우울증에 걸렸단다. 평생 나고 살던 곳 떠나 낯선 곳에 처음 오신 할머니는 치매보다 우울증이 더 깊었다. 종일 말 한마디 걸지 않는 며느리와 한집에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드셨을까. 말씀도 안하고, 식사도 안하고, 그동안 아무리 선생님들이 애를 써도 마음을 안 열더니 이 선생님보고 마음을 연 것 같다며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어차피 나는 실습 끝나면 떠나야 한다. 이제 마음 열었는데 걱정이라는 원장님 말씀대로 나도 걱정이 됐다. 실습 마지막 날,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그날 처음으로 할머니는 나에게 살아온 긴 이야기를 하셨다. 어렵게 마음을 연 할머니의 눈동자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실습이 끝나 내일부터 못 온다는 내 말에 두 손을 꼭 잡고 결국 눈물을 떨구셨다. 할머니를 생각하며 시 한 수 지어봤다.

제목 : 내해여, 내해여

평생 땅만 바라봐서 / 땅하고만 이야기 할 줄 안다는 어르신 / 여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여

/흙 한줌 없는 곳이 어데 사람 살데여 / 아들 따라 낯선 동네 와보니 / 겨울바람처럼 쌩한 며느리 밥 / 그냥 목구멍에 처넣으면 죽기야 하련 / 밥을 퍼 넣다 혼절 하셨다던데 / 밥 위, 얹어드린 생선 토막과 나를 한참 쳐다보다 / 일주일 만에 처음 입 여셨다 / 샥시도 묵으야지 수저를 내민다 / 눈물 한 방울 얹어 밀어 넣자 / 내해여, 내해여 / 한껏 신명 나셨다 / 무엇이 내해일까? / 아무것도 내해인 것이 없었던 서울살이 / 병원 밥은 아들 밥이니 / 내해인 걸까? /아님, 할머니 마음이 내해인 걸까?

*내해여-내 것이여 라는 전라도방언

지루박 노 할머니는 흥이 많아 늘 노래와 춤으로 분위기 메이커다. 노 할머니와 전 할머니가 할아버지 한 분과 삼각관계가 벌어졌다. 할아버지를 두고 두 할머니의 신경전이 주간 보호 센터 가십거리 되었다. 할아버지는 노 할머니보다 음전한 전 할머니를 더 좋아하셔서 몰래 가방 선물을 했다가 노 할머니한테 들켰다. 성격이 화통한 노 할머니는 할아버지 앞에서 한바탕 춤을 추며 자신의 매력을 발산했다. 다시 한번 기회 주는 거니 나한테 넘어오라고 검지를 까닥거리며 춤을 추어 모두를 배꼽 빠지게 웃겼다. 여기도 치열한 한 세상이다.

제목 : 지루박 할머니

허리가 예전 같지 않아 박자를 놓친다며 / 앉아서 들썩들썩 춤사위 펼치는 노 할머니 / 노인대학에서 갈고닦은 실력, 20여 년이라며 / 이어폰 꽂고 간들간들 앉은뱅이 춤추다가 / 그것도 힘겨운지 까딱까딱 졸다가 / 겨우 5분 쪽잠 자고 일어나 / 이어폰 다시 꽂고 춤 삼매경 / 오 분 전, 지루박 가락 타고 어디 가셨다 / 생의 박자 놓친 걸까 / 신나게 지루박 차차차 스텝 밟으며 / 아~싸 머리 위 열 손가락 / 엇박자로 어깨 추임새 넣으며 / 인생 뭐 별거 있냐며 / 뒤로 갔다, 앞으로 왔다 / 제대로 즐기는 살아있는 시간

(6)

실습을 끝내고 요양보호사가 됐다. 첫 출근 한 집에는 청각장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쉬는 꼴을 못 봤다. 할머니가 넘어져 허리 수술을 받고 요양 보호를 받게 됐는데도 쉬려고 집에 있으면 밭에 일거리 두고 논다고 역정을 냈다. 당뇨가 심한 할머니는 깡마른 몸으로 땡볕에서 종일 일을 한다. 반대로 멀쩡한 할아버지는 가끔 보일러나 경운기를 살피는 일 외엔 하는 일이 없다.

할아버지가 볼일 보러 읍내 나간 날, 할머니께 조심스레 지금 할머니 건강상태가 일할 상황이 아닌데 밭일은 할아버지가 해야 하지 않냐고 물었다.

"시집올 때 친정이 찢어지게 가난해 입하나 던다고 땅뙈기나 있는 영감한테 시집와 이날 이때까지 나는 종이오 종. 밥 먹여주는 조건으로 귀머거리 영감한테 시집와 평생 땅만 파고 있다우. 오 남매 낳아 애들 키우며 밤낮으로 밭으로 논으로 살다 보니 몸이 이 지경이 되었고만. 자식들도 지 애비가 날 우습게 여기니 어미를 지들 수족처럼 부리는 하인으로만 여기는 것 같소. 팔자가 그런 걸 어쩌겠소. 여적지 내가 한일 노임이나 받아 나도 한바탕 여행이나 댕기다가 죽고 싶고만."

할머니를 돌보러 갔는데 돌봐 드릴 새 없이 일하는 할머니. 밭일 할 수는 없어 할아버지 밥해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보호자 일은 하지 않는 게 요양 보호 원칙이었지만 아픈 몸 끌고 종일 밭일에 매인 할머니를 위해 부엌일이라도 덜어드리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이곳은 아직도 1900년대 조선 시대에 머물러 있다.

서울과 인천에 사는 자녀분들은 어머니의 이런 생활을 알고 계실까? 딸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의 몸 상태로 밭일 하는 건 무리이니 아버님께 말씀드려 좀 쉬시게 해 드리자고 했다. 어머니를 바꾸라고 하더니 긴 통화가 이어졌다. 얼굴이 빨개진 할머니는 아무 말씀 없었지만, 전화기 밖으로 따님의 목소리가 격양되어 대충 짐작이 갔다. 요양사에게 어머니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고 오히려 어머니께 잔소리를 늘어놓는 모양이었다. 공연히 할머니 심정만 더 상하게 해 드려 죄송했다.

평생 돈 한 푼 만져본 적 없다는 할머니. 파마하러 갈 때도 할아버지께 허락받고 미용실에 전화 걸어 비용을 물어보고 준단다. 그래도 당뇨 검사는 아침마다 거르지 않고 해 주는 할아버지 마음은 무엇일까. 할머니가 건강해야 일을 더 부려먹을 수 있다는 욕심이 아니길 빈다. 여기서 일을 끝내면 한시다. 한시에 이웃해 있는 할머니 한 분을 더 돌보게 됐다.

(7)

아흔 살 김 할머니는 딸과 함께 살고 있다. 가끔 쌍지팡이를 짚고 마당을 산책하며 2층을 올려다보는데 정면으로 보는 게 아니라 흘깃 옆 눈으로 본다. 2층에 가시고 싶으시냐고 물으면 화들짝 놀라 다리아파 못 올라간다고 한다. 종일 사위가 일하는 헛간을 바라보거나 마당을 어슬렁거리다가 강아지에게 느닷없이 욕을 하며 지팡이를 휘두른다.

2층에 사는 딸이 반찬을 해오면 할머니는 늘 '안 먹어 너나 처먹어.'라며 역정을 냈다. 휴가철에 서울 사는 자녀와 손자들이 왔다. 얼굴에 빛이 나며 마중 나간 할머니 걸음은 그들을 따라잡지 못해 2층 계단 앞에 딱 멈췄다. 계단 앞에 앉아 할머니가 나를 손짓했다. 안다시피 올라가 현관문을 열자 딸의 얼굴이 이지러졌다. 할머니가 털썩 마루에 앉자 거실에 둘러 앉아있던 자녀들과 손녀들이 뜨악한 표정이다. 누구도 할머니를 반기거나 마주나오지 않았다.

황급히 내려오는데 죄지은 것처럼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다음 날 할머니는 천상에 다녀온 것처럼 밝은 표정으로 어제 먹은 음식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딸은 나를 불러 어쩌려고 올라왔냐고 눈살을 찌푸렸다. 자녀들이 다녀가고 며칠 후부터 할머니가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밥상을 뒤엎기 시작했고 파리채로 나를 때리기도 했다. 창살 없는 감옥이다. 주위의 시선 때문에 요양원은 못 보내고 함께 지내는 건 싫은 자식들. 요양보호사 일하면서 보니 자식들이 부모에 대한 예의가 없다. 부모를 홀대하는 자식들 저들은 평생 늙지 않나?

(8)

아들한테서 쌍둥이 손녀들을 돌봐 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강화도를 정리하고 성남 아들 동네로 이사를 왔다. 오자마자 센터를 찾아 일거리부터 예약해 놓았다. 쌍둥이 손녀들은 어린이집에서 오후 4시에 오니 그동안 일을 할 수 있다.

93살인 권 할머니는 60살 미혼 아들과 살고 있다. 이른 아침 아들은 문을 잠그고 외출하고 내 퇴근 시간에 맞춰온다. 명절이 지나고 할머니 얼굴에 생기가 돈다. 자식들이 선물한 과일이며 과자 등을 내보이며 자랑할 때면 꼭 어린아이 같다. 나를 붙들고 자식들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어렸을 적 이야기로 신이 난다. 내가 활동하는 3시간 내내 혹시나 자식 이름 하나라도 잊을세라 칠 남매 이름을 외우고 또 외우는 할머니.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손가락을 접으며 똑같은 이름이 되풀이 호명한다. 명절이 멀어지면 할머니의 기억도 퇴색되어가고 콱 죽고 싶다며 삶의 의욕이 떨어진다. 식사량도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할머니는 아직 화장실 갈 때 혼자 가시는데 혹시라도 들여다보면 불같이 화를 냈다. 어느 날 팬티를 갈아입다 팬티에 배변 덩어리를 본 할머니는 곧 식사 거부와 함께 몸져누웠다. 배뇨 장애는 어르신들이 가장 난감하게 여기는 마지막 보루다. 밤에 팬티에 실례를 한다고 아들이 점점 어머니에게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함부로 대하는 아들은 어머니 몫으로 나오는 기초생활비가 필요해 어머니를 요양원에 입소하지 못하게 막고 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아들은 매일 교회로 출퇴근 한다. 어머니 식사는 씹지 못한다는 핑계로 늘 배추에 된장 풀어 끓인 것이 유일한 반찬이다. 덕분에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지만, 종일 똑같은 말씀에 맞장구를 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어느 날, 할머니께 폭력을 쓰는 아들을 말리다 그 일로 나와 크게 다퉈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9)

동창이 장애인 활동 보조인 교육을 권했다. 요양 보호 자격증이 있으면 2주 교육 후 활동이 가능한데 요양 보호보다 급료가 많다고 했다. 요양 보호 일을 잠시 쉬고 교육을 받았다.

가까운 센터에 등록하자마자 바로 연결이 되어 정신장애 2급인 여자분을 돌보게 되었다. 이분은 말이 없다. 내가 먼저 말을 걸면 그저 웃거나 고개를 젓는다. 만난 지 일 년 다되어 가도록 우리의 대화는 내가 "비둘기가 많이 모였네." 하면 "비둘기", 산에 올라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 소리에 "새소리 참 맑지요." 하면 "새" 먼저 말을 거는 유일한 단어는 가끔 용변 볼 때 "화장실" 정도다. 아침 9시에 정신병원 데려다주고 오후 세 시에 데리러 간다. 세시부터 여섯 시까지 사회생활 적응 활동으로 나와 함께 움직인다. 우리가 가는 곳은 정해져 있다. 보건소, 지하철역 지하상가, 우체국. 중앙시장. 세이브 존, 이마트, 동네 뒷산, 세 시간 동안 이곳들을 돌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용자는 의사 표현을 전혀 하지 않아 표정으로 뭔가 불편함을 알아채서 대처해야 한다. 항상 무표정이어서 특히 몸이 아플 때 난감하다. 아픔을 못 느끼는 건지 참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을 하지 않아 곤란한 일을 몇 번 겪었다. 돌아다니는 것도 지겨울 즈음 이용자분에게 그림 그리기를 시켜보니 그림을 썩 잘 그렸다. 며칠 신나서 그리더니 갑자기 그림 그리기를 멈췄다. 강요하지 않고 같이 책도 읽어보고 뜨개질도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다. 몇 번은 열심히 하는데 세 번 이상 시키면 그대로 멈춤이었다. 영화도 보러 가고 요리도 같이 해 보고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즐겁게 하루를 보내도록 노력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왠지 녹녹지 않다. 내 학력을 묻더니 선생님이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평생 데리고 산 나만큼 잘 알겠냐는 말은 물론 수긍한다. 그러나 이용자를 위해 의논 차 꺼낸 말끝마다 '해 보시던지' 흥흥 콧방귀에 비웃음이다. 느낌이 이상해 출근 시간을 정확히 하자며 보호자 분이 원하는 시간으로 쐐기를 박았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일찍 가서 혼나고, 어제는 늦게 가서 혼나는 날들. 나의 출근 시간은 항상 비슷하다. 8시 20분에서 30분 사이. 그러나 출근하면 어김없이 퉁을 놓는다. "왜 이렇게 일찍 와!" 또는 "늦게 오면 어떻게 해" 출근 시간 일정하지 않았냐고 항의했다가는 대문 앞에서 삼십 분 설교를 들어야 한다. 왜 화를 내는지 이유도 모르고 당하는 나는 죽을 맛이다.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니 나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 노릇. 감기 걸려도 내 탓! 생니가 빠져도 내 탓! 하혈해도 내 탓! 살찐 것도 내 탓! 매일 매일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어 저녁이면 녹초가 됐다. 더구나 퇴근 시간을 멋대로 조정해 난감하게 한다. 근무 할당시간은 정해져 있다. 그 시간을 채워야 급료를 받을 수 있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 어떤 때는 몸이 불편하다고 보름씩 출근을 못하게 하니 내 월급은 반 토막이 났다. 그렇다고 그분과 계약이 되어 있어 다른 분 일도 할 수 없다. 센터에서 정해준 시간을 가짜로 체크해 시간을 채우란다. 체크카드를 가지고 다니며 내 맘대로 체크하는 것은 불법이다. 걸리면 그동안 타 먹은 급료 다 토해내고 자격증 반납이다. 그게 아니라도 선뜻 내키지 않는 행동이다. 당신은 입에 지퍼 채울테니 일 안하고 돈 버는데 뭐가 문제냐고 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다 그렇게 했다며 바보 취급이다. 단호하게 그건 불법이라 할 수 없다고 하자 배가 부른 게라고 눈을 흘겼다. 이런 일 하는 주제에 잘난 척이라도 하는 거냐고 비웃는 어르신도 내가 보기엔 정신이 온전치 못해 보였다, 두 달 실랑이 끝에 센터에 보고하고 일을 그만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제일 오래 했다고 한다. 먼저 하셨던 선생님이 나를 보면 걱정스런 얼굴을 하셨던 이유를 알겠다. 어쨌든 그 이용자 때문에 일 년 동안 먹고 산 것은 사실이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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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호흡기 환자인데 급해서 그러니 잠깐 고정인원 배치할 때까지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과장님이 특별히 부탁하는 이유는 나는 남자환자는 맡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잠시만 맡기로 하고 보호자를 만났다. 수더분한 보호자는 첫 만남부터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오랜 투병 생활로 예민한 환자라 걱정이 되긴 했지만, 보호자의 후덕한 인상으로 거절하기 힘들었다.

호흡기 환자라 침대 옆에 복잡한 산소 호흡기가 있다. 기계를 다뤄보지 않은 나는 겁이 났다. 이용자가 작동 방법을 아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유사시에 이용자가 혼절하거나 하면 응급처치를 내가 해야 한다. 기계 다루는 방법을 숙지해야 했다. 그런데 기계에 손만 대면 이용자는 예민해졌다. 일반 산소 호흡기와 달리 복잡했다. 산소 호흡기 옆에 식염수를 채워 넣는 기계가 있는데 수압에 예민하게 작동한다. 늘 수압을 체크하고 식염수가 줄어들면 채워 넣어야 한다.

아침에 출근해 이용자 거처를 청소하고 점심준비를 했다. 보호자가 점심때 먹을 밑반찬을 칸이 있는 사각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감사한 일이다. 나는 찌개나 국만 끓이면 되었다. 점심을 안치는데 이용자분이 밥물을 보잔다. 밥물 계량법을 설명하기 시작하더니 같은 말을 계속하다가 가만히 듣기만 하는 나를 보고 역정을 냈다. 밥물 교육을 삼십 분이나 받은 나는 어이가 없었다. 반찬 할 때도 마찬가지다. 총각 때 자취를 오래 해서 음식을 잘한다는 이용자분의 이상한 조리법은 맞출 수가 없다.

이 이용자분의 눈은 종일 내 동선을 따라 다닌다. 세평 남짓 공간에서 이용자의 눈길에서 벗어나는 길은 묘연했다. 정면으로 바라보면 좋으련만 자꾸 곁눈질로 바라보니 더 이상하다.

족욕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발을 담그자 각질이 둥둥 떴다. 준비해 간 일회용 장갑을 끼고 때수건으로 발바닥이며 발을 문지르니 때가 둥둥 떠다녔다. 물을 세 번이나 갈았는데도 여전히 둥둥 뜨는 이물질들. 바가지로 물을 끼얹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 마무리했다. 용품을 정리하며 개운하냐고 묻자 손을 내밀었다.

"왜 그러세요? 화장실 가실래요?"

손을 잡으니 일어날 생각은 없어 보이고 내 손을 조물락 거린다. 소름이 끼쳤다.

"거기는 내 발 닦아주며 어떤 느낌이 들어? 난 아무 느낌이 없어."

"내가 남자로 느껴져? 뭐가 느껴 지냐구? "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이런 거 하지 마세요. 이거 성추행이에요. 이러시면 앞으로 케어 못 받으시니 조심하세요."

과장님과 면담을 요청했다. 이건 아무래도 성추행 전초전이다. 과장님은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니냐고 했다. 그 후로 발을 닦아 주는 일을 그만두고 그냥 수건에 따뜻한 물 묻혀서 닦아줬다. 최대한 신체 접촉을 피하고 싶어서다. 제 복을 찬 셈이다. 이용자의 시선이 나를 감옥에 가뒀다. 센터에서는 장기 근무자를 구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그 말은 이 이용자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이용자가 응급실을 두 번 다녀오고 점점 호흡이 나빠졌다. 그날은 유난히 날씨기 화창했다. 이용자의 호흡이 이상 증상을 보이며 기계의 눈금이 정상보다 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달려가 이용자를 안아 침대에 눕히려는 순간 내 허리를 양팔로 꽉 끌어안았다. 경련 증상인 줄 알고 마주 안고 괜찮냐고 물어보다 기겁을 했다. 이용자의 손이 내 허리에서 엉덩이 쪽으로 내려오며 쓰다듬는 느낌에 소름이 쫙 돋았다. 손길을 뿌리치고 물러나,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만족한 미소가 드러나는 이용자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입술이 말려 들어가고 있었다. 이용자가 다시 손을 내밀었다. 혼란 속에 이용자 손을 잡으니 자꾸 앞으로 오라는 시늉을 했다. 앞으로 가니 아까처럼 또 허리를 끌어안는다. 잠시 생각을 해봤다. 분명히 기계에 이상 증상이 표시됐는데 도대체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호흡에 이상이 와 힘들었을 텐데 이용자의 행동은 자살행위다. 이용자는 숨쉬기 힘들면서도 가까이 가면 또 허리를 더듬었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던 것 같다.

"무슨 짓이에요? 이거 성추행이에요. 제 돌봄은 여기서 끝입니다."

이용자가 손을 저으며 가라는 시늉을 했다. 얼굴이 백지장 같은 이용자를 두고 나와도 괜찮을지 갈등하다 도저히 진정되지 않아 부들부들 떨며 센터로 향했다. 남자 이용자를 기피하는 이유는 거의 성추행 때문이다. 그래서 이 일을 하는 선생님들은 차라리 의식이 없는 분이 아니면 남자 이용자는 기피목록 1위다.

내가 돌봄 했던 이용자분들 중 좋은 분들도 많다. 때로는 고구마 한 개, 옥수수 한 개, 또는 알사탕 하나로 고마움을 전하던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열악한 환경은 너그러움보다 짜증을 유발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숨이 깔딱거리면서도 성추행하는 이용자를 만나면 분노가 치민다.

요양 보호와 장애인 돌봄을 하면서 만난 이용자와 보호자 생활 수준은 대체로 낮았다. 대개 저소득층으로 기초생활 수급자가 태반이다. 또한, 교육수준도 낮다. 세상에 대한 불만과 욕구가 뒤엉켜 있어 피해의식도 많다. 정상적인 소통이 힘든 부분이 많아 대화할 때 항상 조심스럽다. 그 반면 자신의 현재 위치가 사람을 부리는 위치라는 걸 지나치게 인식해 요양보호사와 장애인 돌봄 인을 하대하는 경향이 있다. 요양 보호법은 가족이 가족을 보살피면 요양 보호 자격증이 있어도 보수를 주지 않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요양보호사를 쓴다. 그래서 보호자들은 없는 살림에 요양보호사가 받는 보수가 배가 아픈 것이다. 이용자가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하면 가족들은 우리가 이용자로 인해 벌어먹는데 뭐가 고맙냐고 화를 냈다. 어느 순간부터 이용자도 심심하면 그 이야기를 곶감 빼먹듯 한다. 그분들의 의기양양한 모습은 어쩐지 슬프다. 물론 그렇지 않고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는 분도 있다. 요양보호법은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한 복지법이다. 나라에서 지급하는 임금은 국민의 세금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부린다는 계급의식이 있다. 그래서 뜬금없는 갑질을 한다. 그런데 이 갑질이 왠지 짠하다. 물론 요양보호사나 장애인 돌봄인의 학력을 문제 삼을 수도 있겠다. 학력 제한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 일을 위한 교육과 시험을 통과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6개월의 교육과 실습은 하루 8시간씩 강행되고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에 합격할 수 없다.

에필로그

내 나이 예순아홉, 내년이면 일흔이 된다. 늘그막에 먹고 살기 위해 학력과 이력을 속인 내 인생은 아이러니다. 결혼과 함께 시어른들 모시고 남매 낳아 기르며 한 번도 나 자신의 삶을 심각하게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 벌을 60대 초반에 톡톡히 치렀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온갖 일, 다 겪으며 그것이 나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명절이면 백 명의 손님을 치렀고, 시동생 결혼식 음식도 시할머니 상을 당했을 때도 집에서 삼백 명 손님을 혼자 치렀다. 심지어 시 외삼촌 상을 당했을 때도. 그 집 딸과 며느리는 방안에 앉아 울기만 해 그 많은 손님 수발을 혼자 하느라 상 나던 날 쓰러졌다. 그때는 관혼상제를 다 집에서 했다. 하다못해 친척들 돌 백일 약혼식 결혼식까지. 시댁은 물론 시할머니 친정 시어머니 친정 일까지 불려 다녔다. 그곳의 내 역할이 내 한평생이었고 그 일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황혼 이혼으로 이 모든 역할이 해제됐다. 내가 지은 건물을 버리고 이혼을 택했던 이유는 오직 남편으로부터의 자유였다. 대학생 남매를 데리고 나온 나는 이미 내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 들었다. 어쩌면 나를 찾을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생 하고 싶던 문학 공부를 하기 위해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나의 늦은 공부는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글쓰기보다 호구지책이 먼저였다. 취업 분투기가 나온 배경이다.

나는 글쓰기 수업에서 아이러니가 어렵다고 고백한 적 있다. 그러나 나의 삶이 아이러니다. 육십을 넘기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나의 직업 분투기는 치열했다.

일흔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이른이다. 이른(일흔) 前 나의 분투기가 이른(일흔) 後 내 삶의 초석이 되길 기원한다.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경험이 글이 되었다. 기초 수급자가 되어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기초생활이 해결되니 이제 쓰기만 하면 된다. 사방 벽 길이가 다른 원룸에서 다리미판 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글을 쓴다. 하나, 둘 작품을 완성하는 기쁨은 나를 설레게 한다. 이제 시작이다. 정진하리라 죽는 날까지. 이른 결심을 축하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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