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지글-지면으로 익히는 글쓰기] <시·끝> (6)시는 누가 쓰는가

입력 2021-09-18 06:30:00 수정 2021-09-17 21:47:28

김욱진 시인

김욱진 시인
김욱진 시인

그 옛날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었습니다. 논밭에 가서 풀 뽑고 김 매면서도 순간순간 와닿는 느낌들을 말로 몸짓으로 읊조리며 살았지요. 새가 울면 새소리를 내고 꽃이 목말라하면 물 한 바가지 퍼주고 나무가 떨면 옷 입혀주면서요. 그게 다 시였고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시는 다 죽었어요. 삭막한 이 세상, 잠든 시심을 깨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순간순간을 놓치지 않고 늘 깨어있어야 해요. 설거지를 하면서도 설거지하는 자가 누구냐고. 직장 가서 일을 하면서도 일하는 이, 나는 누구냐고 틈틈이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사물과 현상들을 똑바로 보는 눈이 생겨요. 그 눈으로 번뜩이는 시상들을 잡아채야 해요. 나 이전의 시인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둘째, 간절하게 사무치도록 시를 쓰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정견과 시심이 굳건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시가 도망을 가버리지요. 시인은 한시도 딴눈 팔지 말고 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관계나 현상들을 부단히 관찰하고 상상하는 감수성을 길러야 합니다.

셋째, 시심은 곧 연민의 마음입니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의 삶 속에 수많은 시상이 숨겨져 있어요. 그들과 나는 둘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그들은 내게로 와 많은 시상들을 부려놓고 가지요. 그러니 시인은 억지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하는 말과 생각들을 진솔하게 받아 적는 거지요. 시인은 이 세상 온갖 물상들과 소통하는 중재자입니다. 그러한 소명 속에서 오랫동안 감추어진 본래의 나를 발견하고, 시인은 일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를 낳지요. 그런 시가 살아있는 시 아닐까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경구 한 줄 적힌 수돗가 거울 앞/ 참새 한 마리 날아와 앉아/ 두리번두리번 살피다/ 거울 뚫어지라 유심히 들여다본다/ 여기, 지금, 나는 누구인가/ 묻고 있는, 참/ 새는 나를 보더니/ 놀란 듯 민망한 듯/ 발가락 오므리고 쫑쫑 수돗가로 걸어가/ 똑똑 떨어지는 물 한 방울/ 콕콕 쪼아 먹고/ 거울 밖으로 훨훨 날아오른다/ 나는 새다/ 나는 새다/ 그러는 새, 나는/ 새는 수도꼭지만 멍하니 쳐다보다/ 거울 속으로 돌아갔다/ 안팎 없는 저, 허공/ 한 무더기 새는 또 어디로 돌아갔는가. (김욱진 詩, 거울 보는 새)

이 시는 나라는 새가 쓴 시지요. 시인은 새라는 말을 자유자재로 부려먹고 있어요. 나는 새다 나는 새다 그러면서, 어느새 나는 새가 되어 거울 속에 있습니다. "새는 수도꼭지만 멍하니 쳐다"보는 나와 "거울 뚫어지라 들여다"보는 새는 둘이 아닌 하나지요. 거울 속 나와 거울 밖 나는 새지요. 여기서 '날아가다, -사이, (물이) 새다'라는 다의미로 활용된 새는 다 자신을 성찰하기 위한 새가 아닐까요. 그러니 나-거울-새 또한 하나로 비춰질 수밖에요. 여기, 지금, 누가 시를 쓰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