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 그림 예찬] 정선(1676-1759), ‘만폭동(萬瀑洞)’

입력 2021-07-26 06:30:00 수정 2021-07-21 19:16:39

미술사 연구자

비단에 담채, 33.2×22㎝,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비단에 담채, 33.2×22㎝,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에 명산대천을 찾아가는 탐승이 문화적 행위로 자리 잡게 되자 금강산을 답사하고 여행기를 남기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유행의 선두에 있었던 김창협의 금강산 답사기인 '동유기(東游記)'(1671년) 일정은 한양에서 출발해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을 유람하고 돌아오는데 31일, 곧 한 달이 걸렸다.

그는 포천, 철원, 김화, 창도, 회양을 거쳐 장안사에서 내금강으로 들어갔고, 외금강을 거쳐 고성과 통천의 해금강을 돌아보고 회양에서 한양도성으로 돌아왔다. 벼르고 별러도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았던 금강산 답사의 풀코스이다. 1914년 철원까지 경원선이 개통하고부터는 서울에서 일주일이면 금강산을 다녀올 수 있었다. 이듬해 '매일신보사 주최 금강산탐승회' 회원 모집 광고가 신문에 났다. 5월 14일 경성에서 출발해 왕복 일주일이 걸렸고 회비는 28원이었다. 금강산은 여전히 인기가 많았다.

내금강 유람의 주요 포인트 중 하나가 만폭동이다. 폭포가 만개나 되는 골짜기라는 이름처럼 크고 작은 폭포가 이루는 계곡미는 곧 산에서 내려오는 차고 짱짱한 물줄기가 잘생긴 바윗돌 위로 쏟아지는 시각과 청각, 촉각의 수석미(水石美)이다. 만개의 폭포가 이룬 담(潭) 중에서 수려한 8담을 꼽아 '만폭동 내팔담'이라 했다. 외금강 '구룡동 외팔담'과 짝을 이루었다.

'만폭동'은 만폭동 계곡의 절경을 그린 금강산 명소도(名所圖)인데 위쪽으로 일만이천 봉우리와 주봉인 비로봉까지 그려 넣어 금강산의 아우라가 실감난다. 화면 중앙 너럭바위에서 동자 하나와 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두 분의 탐승객이 경치를 감상한다. 귀를 울리는 물소리에 목청을 돋우었을 듯하다. 왼쪽에 '만폭동'으로 써놓아 이 명소를 분명히 알렸고 겸재 호로 서명했다. 인장도 겸재이다.

오른쪽 위의 화제는 "천암경수(千嵓競秀) 만학쟁류(万壑爭流) 초목몽롱상(艸木蒙籠上) 약운흥하울(若雲興霞蔚) 고개지(顧愷之)"로 중국 동진시대 고개지의 글이라고 한다. 뜻은 "천 개의 바위 빼어남을 경쟁하고, 만개의 골짜기 다투어 내달린다. 초목이 그 위로 우거지니, 구름이 일어나고 안개가 자욱하다"는 바로 이런 경지를 정선이 그려냈다는 뜻으로 이 그림을 감상한 누군가가 써 넣었다.

울창한 송림이 선사하는 눈맛과 만개의 폭포 소리로 귀를 씻어내는 만폭동은 아닐지라도 가까운 계곡을 찾아 탁족(濯足)의 상쾌한 촉각을 누리는 일도 여름날의 한 가지 보람이다.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