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연이와 버들도령

입력 2022-01-14 18:30:00 수정 2022-01-15 07:17:22

백희나 지음/ 책읽는곰 펴냄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의 일부. 책읽는곰 제공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의 일부. 책읽는곰 제공
백희나 지음/ 책읽는곰 펴냄
백희나 지음/ 책읽는곰 펴냄

퓰리처상 수상작들을 보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진 한 장이 백 편의 기사보다 낫다"는 신문업계의 격언에 말이다.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을 보면 비슷한 심경이 된다. 그림책을 어린이용이라 구분을 둬선 안 되는 이유가 명확해지는 순간이다.

엄마가 구름으로 구워주신 구름빵을 먹고 하늘을 나는 '홍비'와 '홍시'의 창조자, 백희나 작가가 2020년 '아동문학계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추모상을 받은 뒤 내놓은 첫 작품이다.

이야기의 흐름은 '버들잎 도령과 연이' 민담에서 갖고 왔다. 주인공 연이는 계모가 아닌 '나이 든 여인'과 함께 산다. 악의 현신처럼 보이는 나이 든 여인은 한겨울에 연이에게 상추를 구해 오라고 시킨다. 연이는 눈바람을 헤치며 길을 나선다. 그러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커다란 나무 밑 작은 굴로 들어가게 된다. 안쪽으로, 안쪽으로 들어가다 끝에 놓인 돌문을 치우고 버들도령의 마을로 들어선다.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에서 버들도령이 연이에게 상추를 한 바구니 따 건네주는 장면.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에서 버들도령이 연이에게 상추를 한 바구니 따 건네주는 장면.

버들도령의 배려로 상추를 구해 집으로 돌아가자 이를 수상히 여긴 나이 든 여인은 진달래꽃을 구해오라 또 시키고는 연이의 뒤를 밟는다. 버들도령이 연이를 꾀었다 여긴 그는 마을을 폐허로 만들고 버들도령의 목숨을 빼앗는다. 버들도령의 죽음을 목도한 연이는 버들도령이 줬던 세 가지 귀한 꽃으로 그를 살리고, 둘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표현 방식이다. 백희나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인형을 빚고, 실제 풍경에 인형을 두고 장면들을 촬영했다. 그렇게 원작에 감정을 한꺼풀 더 입혔다. 예술적 완성도를 높인 건 닥종이 인형이다. 그가 전작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에서 선보인 닥종이 인형은 이 작품에서도 진가를 발휘하는데, 특히 연이가 상추를 구하러 눈보라 속을 걷는 장면은 보는 이도 몸을 움츠릴 만큼 현실감이 빼어나다.

폐허가 된 버들 도령의 마을을 본 연이의 눈빛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영상 촬영에서 쓰이는 클로즈업 기법을 활용한 이 장면에서는 마치 살아있는 배우의 메소드 연기를 보는 듯하다. 닥종이의 질감은 연이의 슬픔과 버들 도령의 배려를 표현하는 데도 제격이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의 일부. 책읽는곰 제공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연이와 버들도령'의 일부. 책읽는곰 제공

여러 번 "역시"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는데 작가의 섬세한 뒤처리 덕분이다. 나이 많은 여인의 물욕을 강조하듯 그의 왼손 중지에 두 겹으로 끼워둔 옥가락지나 심술보가 덕지덕지 묻은 표정선 묘사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미역국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을 표현하며 생동감을 키운다. 그냥 넘길 수 없다.

이야기 결말은 민담 원작과 다소 결이 다르다. 원작에서는 계모의 필멸이 묘사되지 않지만, 이 작품에서 '나이 든 여인'이라 지칭된 그는 나이들어 외롭게 죽는다. 악행을 자행한 것치고는 심심한 죽음이다.

부관참시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으나 외려 작가는 너 따위의 죽음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두 문장으로 냉정히 끝낸다. "그야 나이가 들어 죽었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말야."

버들 도령의 마을 앞에 놓인 돌문을 여는 주문, "버들 도령, 버들 도령, 연이 나 왔다, 문 열어라"도 후크송처럼 맴돈다. 몰래 중얼거려 본다. 88쪽, 1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