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수원 세 모녀 사건과 문서 밖의 삶

입력 2022-09-23 11:25:05 수정 2022-09-23 18: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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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김희경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rx Weber)는 신의 은총에 기댄 카리스마적 지배, 사회 관습에 따르는 전통적 지배, 합법적 지배로 지배의 이념형을 구분했다. 관료제(bureaucracy)는 합법적 지배의 가장 순수한 형태로, 합리적인 원칙에 따라 체계화된 조직이다. 관료는 오직 비인격적인 규칙에 따라 행동하며, 그의 업무와 권한 역시 규칙에 종속되어 있다. 이러한 합리성을 기반으로 관료제는 근대적 통치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베버는 관료제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관료제는 사람들의 자의성을 배제하기 위해 형식주의 절차를 강조하는데 이는 비인간화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관료제 체제는 한 번 관철되면 바꾸기 어려운 형태의 지배 관계로 고착될 수 있다. 그리고 관료제의 실천은 후회, 무기력, 불만족 등과 같은 특정한 정서를 유발한다.

새삼 관료제의 특성과 한계에 대해 짚어보는 이유는 지난달 발생했던 수원 세 모녀 사건을 둘러싼 대응 양상이 관료제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8년 전 서울 송파구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되면서, 복지 사각지대를 선제적으로 찾아내는 정책이 적극 도입됐다. 하지만, 최근 수원 세 모녀 사건을 통해 시스템으로 파악하기 힘든 '비대상자'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이 드러났다. 이에 대통령은 위기가구를 발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할 것을 주문했다.

제도의 문제를 제도로만 해결하려는 방식은 시스템 자체가 가진 모순을 들여다보기 어렵게 만든다. 한국의 복지체제는 기본적으로 당사자가 자신의 빈곤을 문서로 증명해야 하는 '신청주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다수의 민원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개발된 '문서'는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제도 밖으로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운이 좋아 발굴이 됐다 하더라도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이 실질적으로 소득을 지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실제로 2021년 정부의 발굴 시스템이 포착한 약 134만 명 가운데 기초생활보장제도로 안정적인 소득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경우는 2만8천600여 명에 그쳤다고 한다. 발굴된 위기가구에 실질적인 소득안정책을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복지 예산 자체가 획기적으로 확충되는 등의 조치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위기가구를 아무리 발굴해도 이 같은 비극은 반복될 수 있다.

수원 세 모녀의 경우, 수급 신청이나 상담을 하지 않은 채 고립을 택했다. 그들은 왜 고립을 택했을까. 문서로 남지 않은 그들의 마지막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문서 밖의 그들 삶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두에게 공명정대함을 내세우는 관료제의 합리성은 사람들 개개인의 삶을 깊게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소비지향적인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란 단순한 물질적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행복한 생활을 추구할 능력을 박탈당하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 지속적인 배제를 경험하여 종국에는 사람으로서의 존엄이 손상됨을 의미한다. 문서에는 까다롭기만 한 수급 신청 과정이 불러왔을 무력감, 자신의 가난과 무능을 증명해야만 하는 과정에서의 모멸감, 탈락의 이유를 자신에게서만 찾으며 체념했을 순간이 기록되지 않는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인간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를 고립의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읽을 수 있어야 우리는 문제의 본질에 다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