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

입력 2022-10-05 10:55:51 수정 2022-10-06 20: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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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표’ 이상한 변호사 판타지…서민 영웅 판타지로 돌아온 남궁민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SBS 제공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SBS 제공

단돈 천원의 수임료를 받고 의뢰를 맡아주는 변호사. 돈이면 유죄도 무죄로 만들어주는 사법 현실에 이런 변호사가 주는 판타지는 의외로 강력하다.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는 바로 그 서민 영웅 판타지로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단번에 금·토 시간대 장악

SBS 금토드라마 '오늘의 웹툰'은 최종회에 1.6%(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냈을 정도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일본 원작인 '증쇄를 찍자'의 리메이크작으로서 한국적인 정서를 잘 살려내지 못하면서 나온 결과였다. 내내 금토드라마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SBS로서는 아쉬우면서도 불안감이 느껴지는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꾸준히 이 시간대를 공략해왔고, 그래서 이제 시청자들이 기다려 선택하는 채널로 자리했다고 여겨졌는데, 자칫 그 기대감마저 꺾인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후속작으로 들어온 '천원짜리 변호사'는 이러한 우려를 단박에 날려버렸다. 첫 회에 8.1%로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내더니 3회에는 12.9%까지 치솟으며 SBS 금토드라마 시간대에 대한 자존심을 세웠다. 무엇이 단번에 이런 효과를 내게 했을까.

그건 그간 SBS 금토드라마가 세웠던 일련의 작품들이 시청자들에게 부여한 기대감과 관련이 있다. '열혈사제'부터 시작해 '스토브리그', '하이에나', '날아라 개천용', '펜트하우스', '모범택시', '원 더 우먼' 등등 SBS 금토드라마는 너무 어렵지 않고 기분 좋게 몰입할 수 있는 이른바 '사이다 드라마'를 꾸준히 이 시간대에 방영해왔다. 답답한 현실을 드라마 속에서나마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이다 판타지를 그려온 것.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SBS 제공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SBS 제공

여기에는 여지없이 시청자들의 사이다 판타지를 자극하는 서민 영웅이 등장하곤 했다. '열혈사제'의 김해일(김남길)이나, '스토브리그'의 백승수(남궁민), '하이에나'의 정금자(김혜수) 같은 인물들이 바로 그 서민 영웅들이었다. 이들은 부패한 권력과 맞서 싸우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서민들의 등을 토닥여주는 인물들로 시청자들은 그 스토리가 다소 개연성을 벗어난다고 해도 이를 허용했다. 시청자들이 SBS 금토드라마에 기대하는 포인트가 바로 이것이었다. '오늘의 웹툰'이 부진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서민 영웅이 도드라지지 않았던 것이고, '천원짜리 변호사'가 단번에 이러한 부진을 만회한 이유는 바로 그 서민 영웅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등장한 서민 영웅은 단돈 천원의 수임료를 받고 억울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변호해주고 대변해주는 천지훈(남궁민)이라는 변호사다. 아직까지 왜 그가 단돈 천원만 수임료로 받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 적은 수임료는 그 자체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법 현실에 판타지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취객을 도운 것뿐이지만 전과4범이라는 이유로 소매치기범으로 몰린 의뢰인을 단돈 천 원에 변호를 맡은 천지훈은 그 무고함을 풀어주고 나아가 의뢰인의 딸 수술비까지 마련해준다. 소송을 하느라 한 달 간 구금됐던 의뢰인의 형사보상금을 받게 해주는 것. 즉, 누군가에 대한 호의 때문에 누명을 쓴 일은 무고함이 밝혀지면서 고스란히 보상이 되어 돌아온다. 그걸 해주는 천지훈이라는 괴짜 변호사가 서민들의 판타지를 건드리는 이유다.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SBS 제공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SBS 제공

◆사이다 판타지라면 괜찮아

'천원짜리 변호사'는 제목에 이미 담겨 있지만 '대놓고 판타지'를 이야기하는 드라마다. 현실적인 개연성보다는 특정 상황에서 이 돈키호테 같은 변호사가 하는 속 시원한 사이다 한 방에 더 집중하는 드라마라는 것.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물론이고 전용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을 일삼아 온 대기업 천영배 전무(김형묵)에게 일격을 가하는 에피소드 역시 법정물로서 법 조항을 갖고 싸우는 내용보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일격을 가하는 그 '타격감'에 더 맞춰져 있다. 즉, 천정배 전무가 상관으로 모시며 쩔쩔매는 그 기업의 총수 모회장(정규수)의 변호를 맡아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해줌으로써 더 슈퍼갑이 된 천지훈이 천정배를 쥐락펴락하는 '역전된 상황'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또 모회장이 구치소에 수감된 사이 천지훈이 저지른 갑질 피해를 입은 직원들의 집단 소송 대리인이 된 천지훈은 이 문제를 '빙고게임'으로 해결하는 황당한 선택을 한다. 법정으로 가져가 봐야 실익이 없다는 걸 알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보상, 재발방지 약속 그리고 천정배 사직을 빙고게임 한 판으로 결정하려 한 것. 결국 법조항으로 유추해 연관된 숫자를 불러주게 하는 식으로 시보인 백마리(김지은)와 짜고 천지훈은 게임을 승리로 이끌고 문제를 해결했다.

드라마 하면 먼저 그럴 듯한 전개를 담보하는 '개연성'이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천원짜리 변호사'는 그러한 개연성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다만 그런 갑질의 현실들이 존재한다는 리얼리티를 드라마로 가져올 뿐이고, 이를 드라마적 판타지로 요리해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른바 '사이다 판타지'는 최근 웹툰이나 웹소설 같은 장르들 속에서 대거 등장하면서 대중들에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요소다. 짧은 한 회에 분명한 자극이나 판타지를 주어야 곧바로 반응이 돌아오는 웹툰, 웹소설의 장르적 특성상 이러한 사이다 요소들이 개연성보다도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 특히 금토 같은 이제 한 주간의 피로를 풀어내고픈 시간대에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사이다 판타지 드라마는 더더욱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SBS 제공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SBS 제공

◆코미디와 캐릭터라 가능한 판타지

물론 이렇게 개연성을 무너뜨리고 그려나가는 사이다 판타지에는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이건 일종의 '드라마 게임'에 가깝다는 걸 작품 자체가 드러내는 밑그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건 코미디 같은 풍자적인 유머나 비현실적이지만 재밌고 매력적인 캐릭터에 의해 가능해진다. 한마디로 말해 비현실적이어도 그건 일종의 풍자 코미디니 웃음을 주기 위한 장치이자 캐릭터라고 드라마가 아예 드러내는 것이다.

'천원짜리 변호사'는 그래서 본격적인 소송을 두고 벌어지는 대결이나 법정 공방, 진실 추적 같은 것만큼 천지훈과 백마리, 그리고 사무장(박진우)이 변호사 사무실과 현장에서 벌이는 코믹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또 이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들은 시청자들에게 빈틈없는 웃음을 주기 위한 시트콤에 가까운 유머들을 담고 있다.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천지훈에게 단돈 천원의 소송비를 내고 큰 도움을 받아 지금 역할을 하고 있는 사무장은 그래서 천지훈과 함께 만들어내는 코미디 콤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법무법인 백의 대표변호사인 백현무(이덕화)의 손녀지만 이 사실을 숨기고 천지훈의 시보가 된 백마리 역시 과장된 모습으로 천지훈과 밀고 당기는 로맨틱 코미디 같은 달달하고 유쾌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SBS 제공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의 한 장면. SBS 제공

현실을 가져오되 이를 비현실적 요소로 비틀어냄으로써, 현실을 잊고 극에 빠져들게 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게 만들고 그래서 오히려 현실을 더 상기시키는 방식으로서 브레히트 서사극은 이른바 '낯설게 하기' 기법을 제안한 바 있다. '천원짜리 변호사'가 현실을 풍자해 내는 방식은 바로 이러한 사사극의 장치들을 활용한다. 그런데 여기에 사이다 캐릭터를 세움으로써 그 '낯설게 하기'는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믿고 싶은' 기묘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러한 판타지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남궁민이라는 배우의 적절한 과장을 섞어낸 연기는 주목되는 면이 있다. 현실에서 살짝 벗어난 그의 코미디 연기가 이 판타지를 시청자들이 수긍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