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CT 촬영 없었다…'응급실 뺑뺑이 10대 사망' 환자 떠넘기기 조사

입력 2023-03-30 17:37:51 수정 2023-03-30 19:25:39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MRI, CT 촬영 없이 전원 권유”
"개별 의사, 병원 탓으로 돌려선 안돼"

119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 자료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119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는 모습. 자료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4층 높이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학생이 병실을 찾아 2시간 동안 떠돌다 사망하는 사건(매일신문 3월 28·29일 보도)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대구시 공동조사단이 '병원 간 환자 떠넘기기' 등 이번 사건 쟁점에 대한 조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개별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탓으로 돌리기 보다 응급의료 체계 전반에 대한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0일 경찰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19일 사망한 A(17) 양의 사인은 외상성 뇌출혈로 추정된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추락 사고 2시간여 만에 환자가 사망했다면 사망 원인은 외상성 뇌출혈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A양이 처음 도착한 종합병원에서 MRI, CT 등을 찍는 과정은 없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환자 상태를 보고 보호자와 대화를 나눈 병원 측 관계자가 경북대병원 등 정신과와 외상 치료가 함께 가능한 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했다.

병원 관계자는 "당시 환자는 의식이 있었고 '활력 징후'(Vital Signs)도 정상적이었다"며 "정신과와 외상 치료가 병행됐어야 하는 상태였는데 우리 병원보다는 관련 시설이 더 갖춰진 곳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례가 전형적인 환자 떠넘기기라고 지적했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A양이 처음 간 종합병원에서 MRI나 CT 등을 찍었다면 환자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 결과에 따라 자신의 병원에서 계속 진료하거나 전원시켰어야 했다"고 말했다.

환자권익단체들은 터질만한 문제가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병원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반영되지 않아 구급대가 환자를 이송하면서 계속 전화를 돌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장은 "일반 시민들은 의료 지식이라는 높은 벽 때문에 별다른 문제 제기도 그동안 못해 왔다"며 "정부가 필요한 재정과 인력을 투입해 더 이상은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와 대구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난 29일부터 공동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나섰다. 대구시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의료기관은 모두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이송 중 응급의료기관 선정 과정을 비롯해 환자 전원, 진료에 이르기까지 부적절한 대응이 있었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또한 응급의료체계 작동 단계의 어느 시점부터 잘못됐는지 조사하는 한편, 의학적 판단에 대한 전문가 자문을 진행해 법령 위반 사항이 발견되면 행정처분 등을 실시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개별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의 탓으로 돌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의사협회는 29일과 30일 각각 성명서를 통해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중증과 경증 환자를 모두 수용해 진료를 보고 있기에 정작 당장 응급의료처치가 필요한 중증환자를 수용할 병상이 없었다"고 꼬집었다.

이어 "응급의료 등 필수의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종사자에 대한 규제나 엄격한 법 적용보다는 충분한 개선 대책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집중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