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노벨상, 이그 노벨상이라는 것이 있다. 유럽의 노벨상을 패러디하여 미국에서 만든 것이 이그 노벨상(Ig Nobel Prize)이다. 과학분야에서 가장 훌륭한 연구업적을 낸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다면 가장 엉뚱한 업적을 낸 사람이 이그 노벨상을 받는다. 이 상은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기발한 연구 연감(AIR)'이라는 유머과학잡지에 의해 1991년에 만들어졌다. 영어 이그노블(ignoble, 불명예스러운)과 노벨(Nobel)이라는 단어를 합성해서 해학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 상을 받으려면 "반복할 수 없거나 반복해서는 안 되는" 업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있다.
얼핏 보면 마치 해학적인 코미디 행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수상자를 선정하는 위원회에 진짜 노벨상 수상자도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이그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노벨상을 받는 경우도 있으니 쉽게 무시할 수는 없다. 올해는 어떤 엉뚱한 업적으로 이그 노벨상을 받았을까? 이제 세상에서 가장 엉뚱한 과학연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올해 이그 노벨상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를 타면 신장 결석을 제거할 수 있다는 실험을 한 연구팀이 올해 의학상을 받았다. 바로 미국 미시간주립대 데이비드 바팅거 교수 연구팀이다. 어떤 환자가 디즈니월드에서 롤러코스터를 탔더니 신장 결석이 빠졌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에 들려줬다. 그냥 웃어넘기면 될 것 같은 것을 이 연구팀은 실제로 실험해 봤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에 실리콘으로 만든 신장 모형을 태워서 진짜로 결석이 빠지는지 시험했다. 이 연구에서 롤러코스터의 앞자리보다 뒷자리에 앉았을 때에 훨씬 더 신장의 결석이 잘 빠진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런 괴짜 같은 연구결과가 2016년에 미국정골의학회보에 정식 논문으로 실렸으며 올해 이그 노벨상을 받게 되었다.
자기 엉덩이에 직접 대장내시경을 넣어서 '셀프 대장내시경' 검사를 한 일본의 의사가 올해 의학교육상을 받았다. 일본 고마가네시 종합병원 소아과 의사인 아키라 호리우치는 앉은 자세로 모니터를 보면서 스스로 내시경을 엉덩이에 넣어 대장을 조사하는 방법을 연구해서 간단하게 대장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는 이그 노벨상 시상식장에서 우스꽝스러운 셀프 대장내시경 검사 자세를 직접 보여줘서 참석한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옷이나 물건에 얼룩이 묻었을 때 침을 발라 닦아봤을 것이다. 그런데 오래된 미술품에 침을 발라 더러운 것을 제거하려고 시도한 사람이 있다. 그 소중한 고미술품에 침을 뱉어 닦았을 것이라고 상상을 하니 너무 황당한 느낌이 든다. 파울라 우마오 포르투갈 문화재보전복원센터 연구팀이 18세기 조각품을 닦을 때에 사람의 침과 알코올 세제를 이용해서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사람의 침이 더 좋은 세제라는 결론을 얻어 2013년에 발표했다. 이 공로로 화학상을 받았다.
올해 이그 노벨상은 총 10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했다. 지난 9월에 미국 하버드대학교 샌더스극장에서 시행된 시상식에서 수상자는 10조 달러의 상금을 현금으로 받았다. 그런데 이 상금이 미국 달러가 아니라 화폐 가치가 거의 없는 짐바브웨 달러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몇 천 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엉뚱한 역대 수상작
그럼 이제 지금까지 이그 노벨상을 받은 세상에서 가장 엉뚱한 연구가 어떤 것이 있는지 들여다보자.
몸의 왼쪽이 가려울 때 거울을 보면서 오른쪽을 긁으면 가려움이 사라진다는 연구를 한 독일 루베크대 연구팀이 2016년에 의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름이 없는 젖소보다 이름이 있는 젖소가 우유를 더 많이 만든다는 것을 연구한 영국 뉴캐슬대 연구팀이 2009년에 수의학상을 받았다. 또한 개에 사는 벼룩이 고양이에 사는 벼룩보다 더 높이 뛰는 것을 연구한 프랑스 툴루즈 국립수의대 카디에르게 연구팀이 2008년에 생물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 귀에 고양이 귀 진드기를 직접 넣고 연구한 로버트 로페즈가 1994년에 곤충학상을 받았다.
"다이어트 콜라에는 피임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미국 보스턴 의대 데버러 앤더슨과 "다이어트 콜라에는 피임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 대만 타이베이 의대 연구팀이 2008년에 화학상을 공동수상했다. 그리고 계란 껍데기 속 칼슘을 이용해서 실온 핵융합을 성공시켰다고 주장한 프랑스의 루이 케르브란이 1993년에 물리학상을 받았다. 또한 가짜 염소다리를 달고 초원에서 염소의 삶을 체험한 토머스 트와이츠가 2016년에 생물학상을 받았다.
비상시 방독면으로 사용이 가능한 브래지어를 발명한 옐레나 보드나르 연구팀이 2009년에 공중보건상을 받았다. 이것은 황당하고 우스운 발명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수상자들은 체르노빌 사고 피해자들을 치료해 준 경험을 바탕으로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위험한 공기의 흡입에 의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방독면 기능을 가진 브래지어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수상자
웬만한 괴짜 연구를 해서는 받기 어려운 이그 노벨상을 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다. 커피잔을 들고 뒤로 걸을 때 커피액체가 어떻게 출렁이는지를 연구한 한지원씨가 2017년에 유체역학상을 받았다. 이것은 한씨가 민족사관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연구해서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다. 커피를 와인잔에 담으면 4 헤르츠(Hz) 정도의 진동이 가해져서 잔잔한 물결이 발생하고 말지만 둥그런 머그잔에 담으면 밖으로 튀어 쏟아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컵의 모양에 따라 유체 운동이 달라지는 유체역학적인 연구를 커피잔을 가지고 한 것이다. 이 외에도 1999년에 향기 나는 양복을 개발한 FnC 코오롱의 권혁호씨가 환경 보호상을 수상했다.
◆노벨상 vs. 이그 노벨상
'살아있는 개구리를 자석을 이용해 공중부양 시키는 연구' 와 '스카치테이프로 흑연을 한층 한층 계속 떼어내어 마지막 한층만 남기는 연구' 중에 어느 것이 더 스마트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일까? 놀랍게도 이 둘 중 하나는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그 노벨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것도 한 사람이 이 두 연구를 모두 수행했다. 그가 바로 안드레 가임 교수다.
네덜란드 출신의 안드레 가임 교수와 마이클 베리 교수가 살아있는 개구리를 자기 부상시키는 연구를 했는데 이 공로로 이그 노벨 물리학상을 2000년에 받았다. 이들은 강한 자장이 흐르는 작은 구멍에서 개구리가 공중에 떠서 빙빙 도는 현상을 연구하였다. 안드레 가임 교수는 10년이 지난 2010년에 스카치테이프로 흑연을 한층 한층 떼어내어 그래핀을 만든 업적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래핀은 차세대 꿈의 신소재로서 각광을 받으면 전 세계적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소재다.
우스꽝스럽고 황당하며 아무 데도 쓸 데 없을 것 같은 과학연구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실생활에 활용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우리나라 연구환경에서는 이러한 연구를 실제로 진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그 노벨상을 만들어 해학적 웃음과 함께 과학적 호기심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미국의 과학연구 문화가 지금의 미국을 만드는 데에 어느 정도 기여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김영호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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