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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엔터인사이트] 위기의 '정글의 법칙', 무엇이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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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의 법칙’, 언제부턴가 공존의 고민이 보이지 않았다

최근 SBS '정글의 법칙'은 대왕조개 불법 취식 문제로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2011년부터 방영되며 꾸준히 높은 시청률을 유지해오던 '정글의 법칙'.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겨났던 걸까.

정글의 법칙 첫번째 도전이었던 나미비아 편. SBS 제공 정글의 법칙 첫번째 도전이었던 나미비아 편. SBS 제공

◆생존과 공존의 균형으로 시작했던 '정글의 법칙'

2011년 시작된 SBS '정글의 법칙'은 여러모로 예능사에 있어서는 도전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예능과 교양이 하나의 접점을 만들면서 탄생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당시 교양팀과 예능팀을 합치는 파격적인 시스템 정비를 했던 SBS는(물론 SBS는 다시 팀을 분리했지만), 그 성과로서 '정글의 법칙'을 만들었다. 지금껏 정글이라고 하면 주로 다큐의 영역이라고 여겼지만, '정글의 법칙'은 그것을 예능의 영역으로 확장했다. 그걸 가능하게 해준 건 다름 아닌 김병만이었다. 당시 '정글의 법칙'의 틀을 만들었던 정순영 국장은 우연히 김병만으로부터 어려서부터 자연에서 뛰놀았던 그가 정글이든 어디든 들어가 생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실제로 김병만은 다큐적인 생존을 할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예능적인 요소까지 아우를 수 있는 인물이었다.

문제는 카메라를 들고 정글에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명분이었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 자체로 자연을 예능의 놀이터로 만들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실제로 비슷한 형식으로 정글탐험을 시도했던 90년대에 방영된 KBS '도전 지구탐험대'는 배우 김성찬씨가 라오스에서 촬영하던 중 뇌성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지속되던 이 프로그램은 결국 2005년 개그우먼 정정아씨가 콜롬비아에서 촬영 도중 아나콘다에 물리는 사고를 겪은 후 폐지되었다. 그 같은 논란의 소지가 있던 '정글의 법칙'은 그래서 생존과 함께 '공존'이라는 확고한 명분을 내세웠다. 그래서 정글에서의 생존기를 먼저 보여주고, 그 후에는 그 곳에서 살아가는 원주민들을 찾아가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배우며 소통하는 것으로 '공존의 의미'를 되새겼다.

실제로 당시 '정글의 법칙'의 정순영 국장은 물론이고 제작진들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같은 문화인류학이 경고하는 문명의 정글 침탈을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런 공존에 대한 고민은 2013년 뉴질랜드편에서 불거진 조작논란으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글의 법칙'에 등장하던 원주민들이 사실은 돈 받고 방송에 출연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심지어는 '정글 투어' 관광 상품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결국 '정글의 법칙'은 원주민과 소통하고 공존하는 기획을 포기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정글에서 하는 '익스트림 스포츠' 같은 미션과 게임의 재미였다. 공존의 의미가 조금씩 퇴색하면서 재미가 강조되기 시작한 '정글의 법칙'은 거기서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문제가 된 대왕조개 채취 장면. SBS 제공 문제가 된 대왕조개 채취 장면. SBS 제공

◆'정글의 법칙', 대왕조개 취식 논란에 담긴 것들

최근 방영된 '정글의 법칙' 태국편에서 멸종위기로 보호대상인 대왕조개를 취식해 생겨난 논란은 사실상 몇 년 전부터 예고된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왕조개 취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2012년 바누아투 편에서도 대왕조개 사냥과 취식 장면이 대단한 모험처럼 담겨진 바 있고, 지난 2014년 보르네오편에서도 또 2015년 팔라우편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물론 나라에 따라 대왕조개 취식이 모두 금지되어 있는 지는 알 수 없다. 흔히 팔라우 같은 곳에서는 식용으로 양식한 대왕조개 요리가 유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막에 심지어 '무려 100년을 사는 대왕조개'라고 글귀를 담으면서 그걸 잡아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간과한 건 제작진의 무감각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심지어 이를 '정글 먹방'이라는 재미 코드로 자주 사용한 건, '정글의 법칙'이 애초에 정글에 들어갈 때 가졌던 '조심스러운 접근'이 어느 순간부터 풀려버렸다는 걸 확인하게 한다.

대왕조개가 아니라도, 또 굳이 법적으로 걸리는 보호종이 아니라고 해도 정글에 들어가 거기 자연 속에 살아가는 생물들을 사냥해 잡아먹는 일에는 그만한 윤리적 태도가 필요했다고 보인다. 사실 이런 '정글 먹방' 장면들은 여러 번 방송으로 반복되어 나와 이제는 시청자들조차 둔감해진 면이 있었다. 만일 이번 일이 태국 측에서 문제제기를 하며 불거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정글에서 취식하는 일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 2013년 조작논란이 불거져 나오자 '정글의 법칙'의 모든 장면들이 '연출'로 보였던 것처럼, 대왕조개 논란이 나오자 그간 방송의 자극적인 포인트로 제시되던 '정글 먹방'이 돌연 생물 살육의 현장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논란이 나오고 나서 방영됐던 '정글의 법칙'에서 바다사냥을 통해 그물 한 가득 잡아온 고둥을 직화구이로 먹으며 "치즈 같다"고 표현하는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정글의 법칙 정글의 법칙

◆정글로 들어간 카메라, 어째서 정글은 점점 슬퍼질까

일찍이 문화인류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라는 저서에서 문명이 원주민들을 어떻게 몰아내는가의 이유로 제목에 담긴 총, 균, 쇠를 지목한 바 있다. 즉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고 그로부터 지금처럼 삶의 불균형이 생길 수 있었던 원인이 그들이 발명한 총과 그들이 보유한 균(그들에게는 내성이 생겼지만 원시부족에겐 치명적인), 그리고 무시무시한 칼을 생산하게 한 강철에 있었다는 것. 즉 현재 문명과 원주부족들 사이에 벌어진 삶의 불균형은 부족들의 열등함 때문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운 좋게 총, 균, 쇠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글로 들어가는 카메라는 또 다른 총, 균, 쇠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카메라가 들어간다는 건 결국 사람이 들어간다는 뜻이고, 그러한 문명의 침탈은 원주민들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의 자연적인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카메라에 익숙해진 원주민들은 그것이 돈이 되고 부가 된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정글 투어 같은 상품이 생겨나고 그것이 또 다른 그들의 생업으로 바뀌기도 한다. 100년을 살아가는 생물이라도 돈이 된다면 관광 상품화되어 은밀하게 팔리기도 할 것이다.

'정글의 법칙'에 지금 터져버린 이른바 '대왕조개 논란'은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었던 일처럼 보인다. 물론 첫발은 나름 윤리적인 고민들을 갖고 뗐을 게다. 하지만 여러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그런 고민들은 희석되기 시작했고, 결국 정글 체험이 하나의 재미가 되어버린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우리에게 재미지만 저들에겐 침범이 된다는 사실을 점점 망각하게 된 것이다.

문명이 들어가 파괴했던 무수히 많은 원주민들의 삶의 이야기를 우리는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다. 남미의 마야족 이야기가 그렇고 신대륙의 인디언 이야기가 그렇다. 물론 거기엔 총과 칼이 동원되었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드러나는 위협들은 잘 쓰이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로 대변되는 도시인들의 호기심과 욕망과 그들이 들고 오는 자본이 총과 칼을 대신하는 경우가 더 많다. 정글이 갈수록 슬퍼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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