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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용산방죽/조 순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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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환 씨 조순환 씨

고향을 떠나 서울에 둥지를 튼지도 올해로 50년째다 강산이 5번이나 변했을 세월이니 그곳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더구나 부모 형제도 만날 길이 없는데,

사는 것이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니 지난 것들은 잊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고향에서 살았던 기억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 그리워진다 잊히는 게 아니라 더 선명해진다 가만히 손가락을 세어보고 깜짝 놀랐다

잠시 머물렀던 객지에서 어느새 50년째 살고 있지 않은가?

그리움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것도 닿을 수 없는 인연에 대한 그리움은 오죽할까? 미음 속에 너무 깊이 박혀 제거할 수가 없고 온몸에 배어 지울 수도 없다

용산 방죽은 그런 그리움이 발원하는 곳이다 고향에 갈 때마다 제일 먼저 제방에 올라가 확 트인 호수의 물결을 바라보며 부모형제를 조상하고 친구들과의 추억을 더듬는다 방죽 상류 쪽은 서해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여귀산이 전망대처럼 솟아있다 청명한 가을에는 산봉우리에서 바다 끝에 제주도가 보인다고 했다

우리들은 수없이 여귀산에 올라가 수평선 끝에 걸터앉은 그 섬을 본 적이 있으나 정말 제주도인지 알 길이 없다 신비한 전설의 섬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풍란과 동백나무 군락지를 감고 흐르는 계곡물이 모여 못을 이룬다 사시사철 맑고 차가운 샛 물이 넘치는 그곳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내가 그곳에서 초. 중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와 형제들이 모두 모여 살았다

위로 누나 둘은 시집을 갔다 큰 누나는 시집살이가 힘이 들었는지 친정에 들어와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동생들을 간수했다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저녁에는 삼십 리 밖 성당에 다녔다 캄캄한 밤에 남자들도 가기 무서운 산길을 누나는 혼자 다녔다

'' 도깨비가 많이 나온다는데 어떻게 혼자 다녀?'' 하고 물으면 '' 사탄들이 달려들지만 주 기도문을 외우고 가면 천사들이 양쪽에서 길을 밝혀 준다고 했다 어린 나는 믿음의 힘이 도깨비를 이긴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큰형은 목포에서 자취를 하면서 명문 고등학교에 다녔다 곡식을 가지러 집에 올 때 입고 왔던 검정 교복과 모자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모표가 달린 모자를 수 없이 쓰고 벗기를 반복했다 큰형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 후 여귀산 숲 속에 움막집을 지어놓고 고시공부를 독학했다 가끔 양식을 가지러 산에서 내려왔다 아버지는 포대자루에 곡식을 담아 등에 지워 보내곤 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에 산속 오두막집에서 호롱불을 밝히고 혼자 공부하던 큰형이 독학 3년 만에 고시에 합격했다 큰형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아버지는 글을 배우지 못했다 편지도 읽지 못하고 남의 눈을 빌려야 했다 평생 그 한이 얼마나 사무쳤을까? 큰형의 고시 합격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아들 덕에 지역에서 유명인사가 된 셈이다 큰형은 연기했던 병역을 마치고 그 후 서울에서 고위 공무원직에 올랐다

작은형은 읍내 중학교를 다녔지만 공부에 별 취미가 없어 보였다 매일 아버지 몰래 쌀독에서 흰쌀을 훔쳐 아랫 주머니가 터지도록 담고 다니면서 간식으로 먹었다 아버지는 놀기 좋아하는 사고뭉치 작은 아들을 늘 걱정했다 결국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서울로 가출하고 말았다 그 후 객지물을 먹고 촌티를 벗은 작은형은 얼굴이 하얀 멋쟁이가 되었다 장발을 건들거리며 서울 티를 내고 다녔다 아버지는 가위를 들고 쫓아다녔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밤마다 동네 처녀들을 몰고 마실 다니는 트위스트 춤꾼이 되어 있었다

추석명절이 오면 마을마다 청년회에서 주관하는 연극이나 노래자랑 콩쿠르대회가 있었다 형은 특별 손님으로 초대받아 장발을 휘날리며 현란한 트위스트를 선보였다 가끔 공회당에 가설극장이 들어오기도 했다 청춘영화에 엑스트러로 출연하여 트위스트를 추는 형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나는 형이 준 번쩍거리는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며 친구들 앞에서 시간 보기에 바빴다

물가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개구리처럼 퐁당퐁당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친구들이 보인다 눈이 빨갛고 입술은 파랗게 부르텄다

바위에 앉아 토닥토닥 그을린 알몸을 말린다 인천에 사는 친구, 수원에 사는 친구, 소식이 끊긴 친구들 모습도 환히 보인다 아버지가 읍내장에서 탱크를 사 왔다고

우기는 친구가 있었다 엄마가 밭에서 주워온 별똥 맛이 젤리 맛이라고 허풍을 떠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뻥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우리들은 저녁노을에 얼굴이 붉게 물들 때까지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언젠가 그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물어봐야겠다

''너, 별똥 진짜 먹어 봤어? 정말 젤리 맛이야? '' 장난감이 아니고 진짜 탱크였어?'' 멋쩍게 웃어넘길 친구들의 표정이 그립다

예전에 내 고향을 가려면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더 걸렸다

서울에서 목포까지 기차를 타고 내려가 목포항에서 배를 갈아타야 했다

크고 작은 섬들을 제치고 두 시간 남짓 내려가면 진도 소포리 선착장에 도착한다

선착장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 동안 들어가야 하는 섬마을이었다

지금은 교통이 좋아져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면 6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그러나 거리가 가까워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예나 지금이나 멀기는 마찬가지다

요즘은 멀고 깊은 곳일수록 관광객이 더 찾는 모양이다 고향이 발전하는 것이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무슨 심통이 난 건지 모르겠다 숨겨놓은 고향을 남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도 도로는 매끈하게 포장되어 울퉁불퉁한 신작로를 찾아볼 수 없다 무지개를 쫓아가던 푸른 들녘을 토막 내어 매끈한 도로가 새로 생겼다 친구들과 멱감고 고기를 잡던 정겨운 시냇가는 수해방지를 위해 축대를 쌓아 온통 시멘트로 덮어 버렸다 어린 시절 추억들도 그 안에 갇히고 말았다

고향은 찾아가면 언제나 반겨줄 사람 있을 것 같았다 오래전에 고향집을 지키며 혼자 사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찬바람에 뒹구는 낙엽처럼 방향을 잃고 허둥댔다

빈 들녘에 부는 바람처럼 기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더 그립고 돌아가고 싶은 곳인가? 반겨줄 사람도 없는데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지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의 내면을 보려는 습성이 생겼다 보잘것없는 작은 들꽃이 화려한 장미보다 아름다울 때가 있다 가녀린 몸에 품고 있는 짙은 들꽃향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진정 아름답다는 것은 잘 생긴 외모가 아니다 다듬어진 인격이요 사람다운 내면의 향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눈과 비, 바람과 햇살을 품고 나를 바라보는 용산 방죽처럼,

어느 날 훌쩍 그 방죽을 찾아가면

내가 처음 다져 놓았던 살무새골 아래 명당자리에서 줄낚시를 던질 것이다

값비싼 낚싯대는 필요 없다 그때처럼 자새에 감긴 낚싯줄 3개면 충분하다 갓 잡아온 지렁이를 낚시에 끼워 깊은 곳으로 추를 던져야지, 채집망으로 잡은 새우를 미끼로 끼워 붕어를 유혹 해야지,정적을 깨고 방울이 딸랑거리고 초릿대가 휘면 순간적으로 챔질을 해야한다 손끝에 전해오는 묵직한 붕어의 손맛, 팽팽한 낚싯줄을 당기면 거울같이 반짝이는 은빛붕어가 뒤척이며 퍼덕일 것이다 어느새 마을 친구들이 올라와 소주병과 초장그릇을 내려 놓는다 고추 몇개 상치 몇잎은 오는길에 남의 밭에서 따왔을 터이다 붕어회의 달콤하고 쫀득한 식감에 군침이 돈다

이왕이면 바람 잔잔하고 별빛 달빛이 물결위에 여울지는 저녁이면 더 좋겠다 행여 내가 명당자리로 닦아 놓았던 자리에 낯선 사람이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할까 ?

큰 소리로 물어봐야 겠다

''여보시오 거기 누구요 ? 내 자리인데...''

그 사람이 내게 되 묻는다

''나, 이동네 사람인데 어디서 왔소?''

방죽이 갸우뚱하며 빤히 쳐다본다

나는 지금 서울에서 살고있다

그 자리 그리워 하며 50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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