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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필-오래 된 편지/강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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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희 씨 강문희 씨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낙동강의 갈대로 역은 자그마한 곽 뚜껑을 열었다. 곽 속에는 빛바랜 편자 한 통과 가락지 한 개 그리고 사진 몇 장이 들어 있었다. 편지는 밀고 밀리는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에서 쓴 아버지의 편지였다. '포연으로 가득했던 산하에 가을을 알리는 들국화가 하나 둘 피기 시작 한다'는 내용으로 보아 들국화가 피어 있는 진지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쓴 편지였다. 자식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편지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꼭 살아서 돌아가 사랑하는 당신을 껴안아 보고 싶다'는 대목에서는 목이 메어와 더 이상 읽지를 못했다. 외롭고 쓸쓸한 날 얼마나 앍으셨으면 편지의 귀퉁이가 헤어져 넘기는 부분에 몇 겹으로 스카치테이프를 붙어놓으셨다. 고향이 수몰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갈 때도 낙동강을 떠나가지 못했던 어머니의 슬픈 세월이 오늘도 마루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저문 강에서 삽을 씻는 어머니의 가녀린 등 너머로 강의 하루가 저문다. 평생을 낙동강 가에서 살면서, 밭을 일구고 흙을 만지며 살아온 어머니의 생애는 강을 닮았다. 남자일 여자일이 따로 없는 어머니의 억센 팔뚝은 낙동강의 물결만큼이나 울퉁불퉁하게 고랑이 져 있다. 가혹한 세월을 여자 혼자의 몸으로 맛서 싸우며 살아왔던 어머니의 삶은 전사처럼 강인했고 때로는 갈대처럼 가녀렸다.

낙동강은 어머니의 강이었다. 안동댐이 건설되고 누대를 살아온 마을이 수몰되면서 조상의 산소가 옮겨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갔다. 일가친척들이 뿔뿔이 흩어져 고향을 떠나갔을 때도, 꼭 살아서 돌아가겠다는 아버지의 편지를 굳게 믿는 어머니는 낙동강을 떠나가지 못했다.

갈대꽃이 하얗게 피면 낙동강의 가을은 깊어간다. 첫 서리가 내리고 갈대꽃이 필 무렵이면 어머니는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낙동강의 갈대를 한 짐씩 머리에 이고 왔다. 갈대는 찌고 말려서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손재주가 뛰어나고 섬세했던 어머니는 잘 다듬은 갈대로 이삭은 빗자루를 만들고 줄기로는 소쿠리와 망태, 돗자리와 광주리 등을 만들었다. 그런 밤이면 어머니의 방에는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평소에는 말이 없는 어머니도 갈대를 엮는 밤이면 '전선에서 온 편지' 등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며 밤늦게 까지 갈대를 엮었다.

흐르던 강물이 댐에 가두어지고 거대한 구조물이 물길을 막아도 역사의 고비마다 일어섰던 민중의 물결처럼 도도히 흘러가는 낙동강의 물길을 막지는 못했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넘어 강은 다시 흘렀다.

일 년 365일 하루도 밭에 나가지 않는 날이 없었던 어머니가 비탈 밭에 보이지 않던 날, 집에 들르니 어머니는 넋 나간 사람처럼 마루에 앉아 강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사연인즉슨 오늘 아침에 국방부에서 전화가 왔는데 유학산 기슭에서 아버지의 유해가 발굴됐다는 내용이었다며 유해는 국립묘지에 안장하거나 유족의 요청에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한다고 했다.

뻐꾸기도 비명을 지르며 세월을 일으켜 깨우던 늦은 봄, 아버지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돌아왔다. 유해를 받아든 어머니의 손은 떨렸고 기다림에 지친 가녀린 몸은 휘청거렸다. 평소에도 마루에 앉아, 지금도 저 강 길을 따라 손을 흔들며 달려 올 것 같다던 어머니의 가느다란 기다림마저도 내려놓아야하는 인연의 비정을 감당하기에는, 기다림의 깊이와 길이가 너무도 깊고 길었으리라. 아버지의 유해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묻히었다.

세월이 흘러 인생의 깊이를 알 나이가 되었을 때 쯤 다시 저무는 낙동강을 걸으면 아직도 강의 깊이를 알기에는 어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누구를 원망 한번 하지 않고 일체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살다가 가셨던 어머니의 생애에 이르면 자꾸 목이 메어 온다.

낙동강이 저문다. 시시각각 변하는 물빛은 천지의 조화를 담은 듯 장엄하다. 짙푸르던 강물이 암갈색으로 변하고 이윽고 붉디붉은 황혼이 온 강을 적신다. 강도 하루에 한 번씩 사무치는 외로움을 풀려고 저리도 붉게 꿈틀거린다. 어머니도 저 강물처럼 외롭고 슬픈 날은 아무도 없는 저문 강에서 삽을 씻으며 울었으리라. 이윽고 강은 어둠에 몸을 기대며 고요히 눕는다. 어느덧 강은 적막해지고 반딧불이 한 마리가 그리웠던 시간들을 호명하며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어둠속을 유영한다. 사무쳐오는 그리움에 다시 뒤돌아보면 "야야, 어두운데 조심해라" 일흔이 다된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쩌렁 쩌렁한 목소리가 저문 강물에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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