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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축적의 시간, 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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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김수정 대구오페라하우스 교육홍보팀장

지난 여름, 국립창극단의 '흥보씨'를 보기 위해서 서울 명동예술극장을 찾았다. 우리말, 중국말, 일본말이 뒤섞여 와글와글 정신없는 명동 한복판에서 침착하게 존재를 드러냈던 그 공간이 새삼 기억난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져 시공관, 국립극장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운영되다가 수십년 공백기를 거친 후 몇 년 전 명동예술극장으로 재탄생한 역사적 장소다. 한때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심장이었던 그곳에서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무슨 일이 있었을까.

때는 1948년 1월 중순. 기세등등했던 추위에도 불구하고 여러 날 동안 명동 시공관 일대에 멋쟁이들이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너도 모르고 나도 몰랐던, 음악인도 잘 모르고 관객은 전혀 몰랐던 오페라 때문이었다. 조선오페라협회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춘희(椿姬, 라 트라비아타)'를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는데, 닷새동안 10회 공연 전석매진이라는 진기록이 만들어졌다.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이 펼쳐졌던 것이다.

7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 오페라 관객수는 한 해 42만 명 정도로 집계될만큼 외연이 커졌다. 국제콩쿠르에서, 해외극장에서 한국 성악가들이 맹활약하고 있다. 이제는 번듯한 오페라하우스도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 성남아트센터에 각각 오페라하우스가 있고, 단일건축물로는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있다. 그 중 실제로 일년 내내 오페라공연을 선보이며, 16년째 국제오페라축제를 펼쳐오고있는 오페라하우스다운 오페라하우스는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유일하다는 평이다.

일찍이 한국서양음악이 뿌리를 내린 곳, 박태준과 현제명 같은 걸출한 작곡가들을 키웠으며 1952년 이후 각 대학에 신설된 음악과에서 전문음악인들을 배출한 도시가 우리 대구다. 대구시립오페라단 창단, 대구오페라하우스 개관으로 이어지는 길에 민과 관이 머리를 맞대고,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시민은 시민대로 관심과 열정을 보탠 결과라고하겠다. 결국 7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오페라를 중심으로 축적된 시간의 힘이다.

다가올 19일과 20일,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제1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으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을 올린다. 물론, 대한민국 오페라 70주년 기념작이다. 명실상부 오페라의 메카답게 일찌감치 전석매진을 알렸다. 훗날 대한민국 오페라 100주년의 대구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부터 함께 축적해나갈 또다른 시간들이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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