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인터넷 먹통 '마비된 일상'…소상공인 피해보상은?

입력 2021-10-25 17:06:14 수정 2021-10-25 22:09:55

"대출금 보내야 하는데…e뱅킹 막혀 연체될 뻔"
회사 업무, 금융 거래까지 멈추며 대혼란… ‘정보화사회’ 단면
소상공인 피해보상 문제 진통 있을 듯, "약관상 보상 어려워"
원인은 '라우팅 설정오류', "디도스 공격 추정" 번복

25일 오전 KT 인터넷망이 전국적으로 한 시간 넘게 장애를 일으키면서 대구 서문시장 내 동산상가의 한 옷가게 입구에 '전산망 오류로 인해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5일 오전 KT 인터넷망이 전국적으로 한 시간 넘게 장애를 일으키면서 대구 서문시장 내 동산상가의 한 옷가게 입구에 '전산망 오류로 인해 현금 결제'를 요구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25일 정오를 전후로 1시간여 동안 KT 유무선 통신망이 마비되면서 일상과 일터 곳곳에서 큰 불편과 혼란이 발생했다. 회사 업무부터 금융거래까지 멈추며 혼란이 컸지만 주요 금융기관과 관공서 대형유통업체는 예비망을 갖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KT는 '라우팅 설정오류'가 원인이 됐다는 입장으로 향후 소비자 피해를 구제 방지를 놓고도 적잖은 진통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필 이때… 엉망이 된 점심시간

정보화사회의 중추인 통신사의 유무선 통신 서비스가 마비되자 일상 곳곳에서 문제가 터져나왔다. 가장 곤란했던 곳 중 하나는 점심시간을 맞은 식당가와 카페 등이었다.

배달앱으로 점심을 주문한 직장인들은 음식을 받지 못해 직접 찾으러 가는 사례가 속출했다. KT 통신을 쓰는 가게마다 기기 작동이 멈춰 손님에게 계좌이체나 현금결제를 부탁하는 일이 발생했다. '삼성페이' 등 전자결제수단에 익숙한 젊은 층도 결제를 못 해 큰 곤란을 겪었다.

정오가 조금 지난 대구 두류동 한 카페 직원(24)은 "포스기가 먹통인 탓에 손님들께 이체를 부탁한다고 양해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체 확인은 계좌 주인인 점장만 할 수 있어서 점장이 일일이 전화하면서 주문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점심 시간을 이용해 인터넷뱅킹으로 돈을 움직이려던 사람들도 당황했다. A(38) 씨는 "당장 대출금을 보내야 하는 상황인데 인터넷 뱅킹이 막혀버리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며 "자칫 연체자가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남구 이천동의 B(55) 씨는 "평소 증권사 앱을 통해 주식 거래를 했는데 오늘 갑자기 앱이 안 돼 주식 거래를 하지 못해 화가 난다. 처음엔 우리 집 와이파이 문제인지 알고 공유기를 손봤지만 해결되지 않았고, 뒤늦게 KT 통신망이 모두 불통이었던 것을 알았다"고 했다.

25일 오후 대구 북구 침산동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Dive-Through) 점 앞에
25일 오후 대구 북구 침산동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Dive-Through) 점 앞에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아 카드 결제가 어려워 DT 이용이 어렵다"는 안내문구가 내걸려있다. 이날 오전 11시 20분쯤부터 KT를 비롯한 주요 통신사의 인터넷 유선 및 무선망이 먹통이 되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잇따랐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병원, 일터도 업무차질

망가진 통신망은 일터에서도 혼란을 일으켰다. 병원과 관공서에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자동차 부품업 종사자 E(57) 씨는 "인터넷과 전화 모두 KT를 사용하는데, 오전 한때 모두 되지 않아 당황하고 답답했다. 월요일이라 업무 대금 결제가 밀려있는데 손 놓고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F(26) 씨는 원고 작업 후 출고를 해야 하는데, 접속 장애가 발생해 출고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F씨는 "통신망이 끊기면서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한창 바쁠 월요일 오전에 인터넷 마비가 되는 것에 화가 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병원과 약국 등에서도 시민들의 불편이 컸다. A의원 원장은 "백신 접종하려는 환자 분이 진료실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인터넷이 되지 않아 당황했다"면서 "기다려도 복구가 되지 않아서 일단 주사 접종을 한 뒤 추후 백신접종 전산 등록해 주겠다고 수기로 일일이 환자들의 명단을 받아 적어야 했다"고 했다.

B치과원장 역시 "인터넷이 안 되다 보니 환자 조회도 안 되고, 카드 단말기도 작동하지 않아서 환자도 병원직원도 모두 멘붕상태였다"면서 "일부 환자들은 '시간이 급하니 자동이체를 해주겠다'며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가 휴대전화마저 KT 가입자라 인터넷 뱅킹 서비스마저 불가능해 하염없이 기다려야하는 촌극도 있었다"고 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 측은 "장애 시간 동안 환자 보험 자격 조회와 접수·수납이 되지 않아 불편이 있었다"고 밝혔다.

◆'유비무환' 무풍지대도

이날 대구시청과 구·군청, 경찰, 소방 등 관공서에서 업무에 큰 차질을 빚지 않았다. 외부 인터넷 연결이 안 돼도 별도 회선의 내부망을 통해 행정적인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단지 와이파이 등 인터넷 서비스는 접속이 불안정한 상황이 벌어지는 정도였다.

다만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단말기(소방차량 관제 시스템)가 일시적으로 연결이 끊겨 불편이 생겼다. 현장으로 안내하는 기능의 이 단말기가 잠시 먹통이 되자, 소방대원들은 현장 위치를 다른 방법으로 미리 파악한 뒤 출동을 해야 했다. 이로 인한 지체는 길지 않았다고 소방당국은 밝혔다.

대구소방안전본부의 경우 이날 오후 1시 기준으로 119 상황실로 '인터넷이 안 된다'는 내용의 문의 전화가 3건 접수됐다. 119 상황실에선 "KT 통신망 때문에 빚어진 일이어서 어떻게 조치할 방법이 없었다. 전국적으로 인터넷이 안 된다고 안내했다"고 설명했다.

관공서와 대다수 금융기관, 대형유통업체 등은 별도회선이나 대비책을 갖춰 별다른 혼란 없이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DGB대구은행 관계자는 "사고에 대비해 예비통신망 장비 등을 갖추고 있어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 대구점 관계자는 "결제관련 통신망은 이중회선을 쓰는 등 우회 프로그램과 보조망이 구축돼 있어 결제시스템과 출입관리 시스템이 마비되는 일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소상공인 피해보상은?

통신 서비스장애로 인해 매출에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과 개인가입자들의 피해보상 방안도 향후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과거와 달리 현금 대신 전자결제 비중이 높아지면서 통신이 끊기면 영업에 타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통신 3사의 인터넷 이용약관은 '고객의 책임 없이 인터넷 품질불량으로 피해가 생기면 해당 기간 요금의 6배를 최저기준으로 협의해 배상한다'고 공통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 역시 장애 사실을 회사에 알린 후 3시간 이상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거나 1개월간 서비스 장애 누적시간이 6시간 이상 초과된 경우로 한정한다. 이날 통신장애가 1시간여만에 해소되면서 약관상으로는 피해보상 대상에 해당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마저도 약관에서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손익과 정보, 자료 등 손해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결국 요금 이외의 보상은 약관상 불가능하다. 대규모 통신장애가 발생할때마다 갈등은 반복되고 있다.

2018년 KT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사고로 서울 5개구와 고양시 일부에서 인터넷이 먹통이 됐을 당시에는 KT는 연매출 30억원 이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서비스 장애복구 기간에 따라 1~2일은 40만원, 3~4일은 80만원, 5~6일은 100만원, 7일 이상은 12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는 정치권까지 나서 자영업자들에 대한 보상을 촉구하면서 KT가 사실상 울며 겨자먹기식 보상 대책을 내놓은 예외적 경우라는 게 중론이다.

양순남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통신장애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의 피해 사례가 계속 접수되고 있다"며 "피해 입증 책임이 통신사가 아닌 고객에게 있다보니 현실적으로 구제가 어렵다"며 "연간 1회 내외의 빈도에 그칠지라도 심각한 피해 수준을 고려할 때 근본적인 해결책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 원인은 무엇?

문제가 불거진 직후 KT는 대규모 디도스 공격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했으나 2시간여가 지난 이후 '설정오류'라고 정정했다. 이번 사고가 불가피한 외부요인에 의해 발생했다기보다 예방할 수 있었던 인재였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부분이다.

KT는 공지를 통해 "초기에는 트래픽 과부하가 발생해 디도스로 추정했으나 면밀히 확인한 결과 네트워크 경로설정(라우팅) 오류를 원인으로 파악했다"며 ""정부와 함께 더욱 구체적인 사안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라우팅은 데이터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가도록 할지 정하는 일이다. 통신사들은 라우팅을 통해 대규모 트래픽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KT 측은 아직까지 라우팅 오류의 구체적인 원인 등 자세한 내용을 발표하지 않은 채 조사 중이다. 일부 업계에서는 라우팅 관련 설정치가 잘못 지정돼 트래픽이 특정 네트워크로 쏠리면서 과부하가 일어나고 이후 전체 인터넷망이 마비되기에 이르렀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디도스 공격을 원인으로 거론한 KT의 초기 발표가 부적절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사가 회선을 다중화해 사용하는 점을 고려했을 때 디도스 공격으로 전국망이 동시에 마비되는 상황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날 오후 방송통신 재난대응 상황실을 구성하고 이번 사고에 대한 심층 조사에 착수했다.